국무총리실에 이어 청와대까지 나선 끝에 20일 극적인 합의를 이룬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이 전체 형사사건의 90% 이상을 직접 수사하고 있는 현실을 법률에 반영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도 절도 폭력 등 대부분의 사건에서 입건부터 송치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담당하는 사법경찰관의 법적 위상을 검사의 수사업무 보조자에서 수사 주체로 격상시킨 것이다.
경찰의 수사개시진행권 명문화
조정안은 우선 사법경찰의 관리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196조에 사법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에 관하여 수사를 개시진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기존 형소법은 사법경찰관은 수사를 할 때 반드시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규정했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 규정은 경찰이 범인 검거 및 조사, 증거수집 등 대부분의 수사실무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각종 영장청구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단계에서 검사의 지휘를 받고 있는 실제 수사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법경찰관이 스스로 수사를 개시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형소법에 명문규정을 신설한 것은 법률과 현실의 괴리를 줄이려는 조치다.
사법경찰관에게 수사개시권과 진행권을 부여한 것은 수사가 사법경찰관의 직무임을 분명히 했다는 의미도 있다. 지금까지는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권한은 전적으로 검사에게 있었다. 따라서 사법경찰관의 직무는 수사를 하는 검사를 보조하는 일었을 뿐 수사 그 자체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2005년 형소법 개정 논의 때 195조 검사의 수사 항목에 수사 주체로 검사와 사법경찰관을 함께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의에서도 경찰의 바람은 온전하게 수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개시권과 진행권을 손에 넣음으로써 최소한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 이를 수사하는 일이 자신들의 고유 업무라는 점만은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검찰 수사지휘권 큰 손상 없이 유지
조정안은 경찰에게 수사개시권을 내주는 대신 검찰에게는 경찰이 수사하는 모든 사건에 대한 지휘권을 원칙적으로 보장했다.
현행 형소법은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해왔지만 조정안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표현을 바꾸었다. 수사 범위가 내사를 포함하는 것인지, 내사와 수사의 구분은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검찰과 경찰의 해석이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경찰 수사가 검찰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전제만은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새로 집어넣은 것은 수사지휘권이 경찰이 관여하는 사건 전체라는 점을 명확히 하자는 검찰 주장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정안은 범죄수사 관련 검사의 직무상 명령에 대한 경찰의 복종의무를 규정한 검찰청법 53조는 복종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에 경찰의 반발을 샀던 점 등을 감안해 삭제했다. 대신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로 표현을 순화해 형소법 196조 3항에 추가했다.
경찰에 수사개시권과 진행권을 주는 대신 수사를 종결할 권한은 검찰에 있음을 분명히 한 점도 이번 조정안의 특징이다. 조정안은 형소법 196조에 사법경찰관은 범죄수사를 한 때에는 관계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검사에게 송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4항을 추가했다. 그동안 검찰은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진행하게 되면 불투명한 수사로 국민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결국 이 조항은 수사가 끝난 이후에는 관련기록을 검찰에 반드시 넘겨 사후 통제를 받도록 해 인권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수사를 개시-진행-종결의 3단계로 나누어볼 때 종결권을 검찰이 갖는다는 의미를 가진 이 조항이 검찰의 권한 강화보다는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 보장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성철 신민기 dawn@donga.com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