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찰의 행보를 보면 한국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이 앞으로도 여전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4대 사회악 척결에 올인(다걸기)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업보다는 엉뚱한 곳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방식도 흘러간 옛 노래만큼이나 진부하다.
선창은 이성한 경찰청장이 불렀다. 그는 지난달 11일 전국 경찰 지휘부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 100일인 6월 4일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4대악 척결에 경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 출범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의욕 과잉의 수사()다. 경찰이 대처해야 할 다종다양한 범죄 중에서 유독 4대악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건 배임행위라는 걸 경찰총수가 모를 리 없다.
여기서 그쳤으면 경찰총수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다짐으로 여기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지역의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공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부모와 그런 부모 밑에서 대체로 학습 부진에 시달리는 자녀를 보는 듯하다.
대통령 공약에 따라 임기 2년이 보장될 경찰총수의 문책 경고를 가벼이 넘겨들을 경찰 지휘관은 없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여주기 식 홍보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구 중부경찰서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한 동영상 레폴리스블(Les Policebles)을 만들자 전북경찰청은 돈 워리(Dont worry) 4대악!이란 동영상을 내놓았다. 인기 개그맨과 걸그룹, 겨울올림픽 메달리스트도 잇달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최근에는 4대악 척결 소주까지 등장했다. 소주 처음처럼 뒷면에는 걸그룹 카라의 구하라가 방긋 웃는 사진 옆에 4대 사회악 근절!이라고 적힌 라벨이 붙어 있다. 지난해 참이슬에 주폭 근절 라벨을 붙인 발상을 답습했다. 일선 경찰의 움직임은 4대악 척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운 대통령에게 뭐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웅변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치안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휘관의 특별승진을 위한 것이겠죠라는 하급 경찰들의 푸념에 오히려 공감이 간다.
정책홍보에 공을 들여야 때가 있다. 집행 과정에서 마찰이나 저항이 예상돼 미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 정책이 그렇다. 4대악은 다르다. 엄정한 법 집행과 범죄 예방만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고 홍보대사를 위촉하는 구태를 반복하는 데 굳이 경찰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럴 힘이 있다면 민생현장에 투입해야 한다.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