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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가 잃은 것 vs 중국이 잃은 것

Posted August. 28, 2013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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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전 중국 충칭() 시 서기에 대한 법원 심리가 26일 일단락되고 구형 및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재판을 부패 척결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포장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중국의 일반 국민과 세계에는 최고위 권력층의 그들만의 정치 뒷면을 보는 기회가 됐다.

마오쩌둥()이 1957년 반()우파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 정치 골격을 세운 것처럼 시진핑() 체제가 좌파 세력을 정리하고 권력 기반을 다져 나가려고 하는 것도 보게 됐다. 이번 재판을 문화혁명 이후 최대의 정치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재판이 보여준 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내면에는 곪은 환부와 치부도 많다는 점이었다. 한때 최고 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유력 후보였던 보시라이는 자신에 대한 부패 및 권력 남용 등 혐의에 대해 아내와 부하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보신을 위해 자신이 외도를 했다거나 아내와 심복이 연인 관계였다는 자폭성 폭로도 나왔다. 아들은 부모의 후광으로 스폰서로부터 전용기를 제공받아 아프리카로 놀러 다녔다. 아내는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며 기업인으로부터 수십억 원을 챙겨 다른 사람 명의로 프랑스 해변 도시 니스에 별장을 사둔 사실도 공개됐다. 아내는 당 서기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업고 충칭 시 공안국 간부를 마음대로 부려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

중국 정부가 재판의 투명성을 강조했다지만 30여 년 전 문화혁명 4인방 재판(198182년) 때보다 자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TV 중계도 하지 않았고 법원 대변인이 매일 언론 브리핑은 했지만 웨이보(중국식 트위터)에 이미 나온 내용을 읽은 뒤 나가는가 하면 웨이보의 내용도 편집됐다.

재판이 열린 산둥() 성 지난() 시는 법원 주변은 물론이고 시내 곳곳이 통제돼 재판을 하는 건지, 시위 진압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검찰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조사를 포함해 1년 넘게 조사했다면서 관련자 증언 외에 변변한 증거물 하나 제출하지 못해 보시라이의 역공을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보시라이 개인은 가족과 권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를 단죄하려던 중국 또한 지도층의 음습한 비리 구조가 드러나 국가 신뢰도에도 타격을 주었으며 사법 체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에도 생채기가 났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는 물론이고 국제 질서의 판을 다시 짜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보여준 중국의 모습은 세계의 지도국으로 올라서기엔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줬을 뿐이다. 중국의 굴기(굴)가 불편하고 중국이 내놓는 규칙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데는 중국 스스로도 책임이 크다.

중국이 보시라이 재판을 통해 세계에 보여준 것은 중국이 세계의 보편적 기준에 아직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중국이 보시라이 재판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