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뻔해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 탁구선수와 학창시절 탁구 좀 친 30대 후반 기자의 탁구 대결. 선수라고는 하지만 체격은 물론이고 힘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탓에 기자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서브조차 받기 힘들었다. 22일 경기 군포시 시민체육관에서 열린 탁구 신동 신유빈 양(9군포화산초)과 기자의 대결은 단 5분 만에 1-15 기자의 패배로 끝났다. 탁구 신동이라는 말이 몸으로 와 닿았다.
신 양은 18일 막을 내린 전국종별학생탁구대회 초등부 여자단식에서 고학년 언니들을 제치고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3월 경기도 선발전에서는 초등부 여자 단식, 복식, 단체전을 휩쓸며 대회 3관왕에 올랐다. 작은 키(138cm)에도 폭발적인 드라이브와 다양한 기술을 구사해 또래에는 적수가 없을 정도다. 귀여운 얼굴로도 인기가 많아 탁구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유빈이에게 탁구는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탁구선수 출신인 아버지 덕분이었다. 돌이 지났을 무렵부터 탁구채를 장난감 삼아 놀았다. 인형 등 많은 장난감이 있었지만 유독 탁구채와 탁구공만 찾았다. 아버지 신수현 씨(41)가 운영하는 탁구클럽은 놀이터였다. 어머니 홍미선 씨(41)는 유빈이는 울다가도 탁구채만 쥐여주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탁구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탁구 덕분에 한글도 일찍 깨쳤다. 신 씨는 다섯 살 많은 언니가 탁구일지를 쓰는 것을 보고 유빈이도 일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다섯 살 때 한글을 깨쳤다고 말했다.
신 씨는 당초 유빈이를 선수로 키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기술도 곧잘 따라하고 머리 하나가 큰 언니 오빠들을 이기는 딸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어렸을 때부터 유빈이를 지켜봐 왔다는 남자 탁구대표팀의 이상수 선수(삼성생명)는 유빈이는 내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친다. 힘은 부족하지만 기술도 뛰어나고 집중력도 좋다고 칭찬했다.
다섯 살 때 본격적으로 탁구를 시작한 유빈이는 하루 6시간의 훈련에도 싫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신 씨는 내가 봐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탁구를 좋아한다. 밥을 빨리 먹는 이유도 탁구를 치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아이다라고 했다. 훈련을 마치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서도 유빈이의 머릿속에는 탁구 생각뿐이다. 만화영화를 보는 대신 인터넷으로 세계적인 탁구선수들의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유빈이에게 한국 탁구계가 거는 기대는 크다. 3세 때 탁구를 시작한 뒤 11세에 최연소 탁구대표로 발탁돼 현재 일본의 간판 탁구선수로 성장한 후쿠하라 아이(25)처럼 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남규 남자 탁구대표팀 감독은 그 나이 때에 유빈이만큼 잘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유빈이가 잘 큰다면 한국 여자 탁구의 전성기를 가져온 현정화(한국마사회 총감독) 다음으로 훌륭한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평가했다.
군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