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7일 국가안보국(NSA)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동맹국 등 해외 정상 수십 명에 대한 도청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인 전화 통화기록 분석 전에 법원의 영장을 받도록 하는 등 개인 사생활 보호 조치도 강화했다.
하지만 정보기관들이 영장 없이 국가안보문서라는 이름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관행과 인터넷 서비스 회사 등에 대한 암호 무력화 기술에 대한 규제는 언급하지 않아 미흡한 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법무부 청사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의 가까운 친구나 동맹국 정상의 통신 내용을 감시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미국)와 가깝게 일했고 그들의 협조에 우리가 의존해 온 외국 정상들은 우리의 진정한 파트너로 취급받을 것이라는 점을 믿어도 좋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 고위 당국자들은 이미 (정상) 수십 명의 도청 활동이 중단됐다라고 미국 언론에 말했다. 하지만 어느 나라가 NSA 도청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동맹국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제외됐는지도 알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18일 독일TV ZDF와의 인터뷰에서 의사소통과 신뢰를 방해할 수 있는 감시 메커니즘으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며 내가 미국의 대통령인 한 독일 총리는 (감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독일이나 다른 모든 나라의 정보기관처럼 미 정보기관도 각국 정부의 의도에 계속 관심을 둘 것이고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개혁안은 지난해 6월 NSA 계약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NSA의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 관행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여론의 도마에 오른 지 7개월여 만에 나온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직면한 테러의 위협과 개인 정보 보호라는 가치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해외 정상 도청과 함께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미국인 전화 통화 메가 데이터 수집 및 분석에는 상당한 제한이 가해졌다. 개혁안은 NSA가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통화기록 수집 및 분석 전에 판사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예전에는 해외 테러용의자와 3단계를 거쳐 관계가 있다고 의심되면 조사 대상에 올랐지만 이를 2단계로 줄였다.
NSA가 그동안 수집한 통화기록 저장도 민간에 넘어간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릭 홀더 법무장관과 정보기관장들에게 60일 이내에 구체적인 위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NSA를 관장하는 비밀 해외정보감시 법원에 개인 사생활 보호를 담당하는 공익변호사가 배치되고 외국인에 대한 사생활 보호 장치도 강화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기관들이 법원의 영장이 아닌 국가안보문서를 제시하고 금융회사나 휴대전화 서비스회사 등 민간기업에서 고객 정보를 얻는 관행은 언급하지 않았다. 구글이나 야후 등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의 전산망에 뒷문으로 들어가 정보를 캐내는 암호 무력화 기술 등에 대한 규제 요구도 묵살됐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성명을 통해 동맹국 정상에 대한 감청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결정은 옳은 방향으로 한발 내디딘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이번 개혁안이 사실상 아무 내용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도 고심의 흔적은 있지만 범위는 매우 제한됐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