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경제학자 크루그먼의 대학 이적

워싱턴특파원 시절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프린스턴대 캠퍼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고풍스런 대학 건물은 고즈넉한 중세 유럽의 도시처럼 아름다웠다. 학교 내엔 골프장까지 있다. 지난해 프린스턴대에 아들을 입학시킨 한 금융회사 사장은 학비 5만 달러에 기숙사비까지 합치면 연 7만 달러를 웃돌지만 학교를 가보고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나도 그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린스턴은 특히 경제학에서 수위()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앨런 블라인더 전 연방준비제도 부의장, 경제학교과서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교수로 있다. 버냉키는 작년 이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프린스턴대학 같은) 사립 명문대에 다니는 건 매년 최고급 캐딜락을 구입해선 절벽으로 처박아버리는 것과 같다고 엄청난 대학등록금을 비판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일에 대한 애정이나 열정이 아닌 돈을 기준으로 하는 건 불행에 이르는 첩경이라는 그의 조언이다.

인근 뉴욕주에 있는 뉴욕시립대(CUNY)는 첫 주일 미국대사였던 타운센드 해리스씨가 1847년 무상고등교육을 위해 설립했다. 신입생은 143명으로 작게 시작했지만 지난해 재학생이 27만 여명이다. 뉴욕시와 인근에 24개 캠퍼스를 갖고 있다. 석사, 박사과정에 노벨상 수상자도 10명이나 배출했지만 캠퍼스가 아름답다고 하긴 어렵다. 관공서 건물처럼 실용적이다.

뉴욕타임스에 격주로 기명 칼럼을 쓰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가 내년 8월 CUNY로 자리를 옮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탄 크루그먼이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CUNY로 이적하는 것이 대학 간판을 중시하는 한국에선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사회평등과 소득불평등에 천착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답게 이 대학 룩셈부르크소득연구센터에서 소득불평등과 분배정의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크루그먼이 입만 진보이고 행동은 따로인 국내 일부 경제학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 영 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