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전 동독에 속했던 작센 주의 라이프치히는 상업과 예술로 유명한 유서 깊은 도시다. 중세 때부터 상품 박람회가 열렸다. 바흐, 멘델스존, 바그너, 괴테가 여기서 예술의 꽃을 피웠다. 바흐는 이곳의 성 토마스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말년의 대작들을 남겼다. 성 니콜라이 교회는 독일 통일운동의 시발이 된 월요 평화 기도회가 열린 곳이다. 기도회 자체는 1982년 시작됐으나 1989년 9월부터 기도를 마친 뒤 자유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이 늘면서 다른 곳으로 확산됐다.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북한에서 라이프치히와 가장 비슷한 곳을 꼽으라면 개성이 아닐까 싶다. 고려의 수도로서 당대에 이미 무역의 중심지로 세계로 열려 있었고 개성상인이란 말을 낳은 곳이다. 서경덕 황진이 한석봉 등 수많은 문인과 예인이 활동했던 점도 비슷하다. 남북의 대치가 심화된 상황에서도 현재 5만 명이 넘는 북측 근로자가 남측 입주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며 남북의 상생과 통일을 꿈꾸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이 어제 육로로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왔다. 개성공단의 남측 천주교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지만 추기경의 첫 방북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둔 시점에서 북이 염 추기경에게 개성공단의 문을 열어줘 뭔가 남북 간에 가톨릭 차원에서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소탈한 행보로 존경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한반도 평화를 비는 미사를 집전하면 국내외의 이목이 쏠릴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625전쟁이 발발한 6월을 매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로 정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미사 등의 행사를 갖는다. 북한에도 있는 유일한 성당이 장충성당이다. 1988년 10월 로마 교황청의 특사가 방문해 축성식을 거행하고 미사를 올렸다. 염 추기경이 평양도 방문해 장충성당에서 집전을 하는 날이 빨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