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에는 정년이 없다는 말이 있다. 노인도 성욕이 있다. 그러나 노인의 성욕이 아니라 노인을 향한 성욕은 적응이 잘 안 된다. 노인에게 성욕을 느끼는 것을 노인성애증(gerontophilia)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성욕을 느끼는 소아성애증(pedophilia)과 마찬가지로 병적인 증상이다. 남자 노인을 향한 성욕을 알파메가미아, 여자 노인을 향한 성욕을 아닐릴라그니아라고 부른다. 노인성애증이라는 말은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이 만들어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정신의학자다.
인천의 가방 시신 살해범 정형근이 할머니를 성폭행하려다 할머니가 저항하자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정형근은 할머니와 술을 마시다 욕정이 생겨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가 저항하자 옆에 있던 사기 물컵으로 할머니를 폭행해 쓰러뜨렸으며, 이후 할머니가 숨진 줄 알고 가방에 담으려다 숨지지 않은 사실을 알고 흉기로 살해했다. 살해범은 55세이고 피해자 할머니는 71세다.
그러나 가해자의 병적 도착으로만 노인 대상 성범죄를 설명할 수 없다. 깁스를 하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성애를 느끼는 것을 보행장애인 성애증(abasiophilia)이라고 한다. 병적 도착이라기보다는 저항이 어려운 상대를 골라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가깝다. 노인도 자력으로 스스로 보호할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노인이 쉽게 강도 절도의 피해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도착적이지 않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2년 전 경기 평택시의 한 병원에서 62세 여성 환자가 33세 남자 간호조무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나 가족한테 알리지도 못했다. 뒤늦게 경찰에 신고했지만 먼저 유혹하지 않았으면 그랬을까라는 주변의 싸늘한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인천 살해 사건도 성폭행으로 끝나고 말았다면 71세 할머니가 쉽게 신고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범인은 이런 점을 노린 건지 모른다. 여성 노인의 성범죄 피해에 사회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