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지배하던 팔루자에 사는 11세 이라크 소년 체하브는 지난해 아버지가 실종된 후 두 동생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아버지는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이라크 정부군이 운영하는 팔루자 피난민 캠프로 탈출한 가족은 장남인 체하브가 매일 길거리에서 채소를 팔아 버는 2000∼3000이라크디나르(약 1900∼2800원)가 유일한 수입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팔루자에서 모든 걸 잃어버린 우리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 장남이 거리로 나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IS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에는 체하브처럼 학교 대신 일터로 끌려가 생계를 책임지는 소년 가장이 57만5000명이 넘는다고 알자지라가 23일 보도했다. 전쟁으로 학교의 20%가 폐쇄된 이라크에선 1990년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아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반강제적으로 일하고 있다. 전국을 강타한 전쟁으로 죽음과 성폭행, 유괴, 강제징집 등의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300만 명이 넘는다. 유엔에 따르면 이런 ‘위기의 아동’은 최근 1년 6개월간 100만 명 이상 늘어났다.
이라크 어린이들이 7, 8세부터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내몰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서 전쟁이 끝나도 국가의 미래는 밝지 않다. 미래 주역인 이들은 독성 물질이 가득한 화학 공장이나 쓰레기 수집장에서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장시간 일한다.
11세 소년 압둘 카림은 5월 이라크 정부군이 IS 거점인 팔루자를 탈환하는 와중에 가족과 함께 도시를 탈출해 피난민 캠프로 왔다. 그의 아버지가 폭격으로 사망해 카림은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됐다. 그는 캠프에서 빨간 아이스박스를 들고 다니며 탄산 음료를 팔아 가족을 부양한다. 카림은 “학교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며 “여기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해 친구들과도 놀지도 못한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어린이들은 갖가지 악조건에서도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로 쉽게 부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어린이만 골라 쓰는 악덕 업주도 많다. 유니세프의 이라크 담당 마울리드 와르파 씨는 “오늘의 이라크는 어린이가 살기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라며 “매일 일에 찌든 아이들이 장차 어떻게 자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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