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군사기밀 도청 및 정보 가로채기 등을 막기 위해 우리 군이 사용하는 암호장비 10대 가운데 3대가 고장 난 것으로 밝혀졌다. 군용 유선전화 및 휴대전화, PC, 팩스 등에 연결해 사용하는 암호장비의 상당수가 사실상 ‘먹통’이 된 것으로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군 작전 상황 등 각종 군사기밀이 북한군의 ‘눈과 귀’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실이 국방정보본부로부터 제출받아 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군이 현재 운영하는 각종 암호장비 85종 14만여 대 가운데 지난해 1년 동안 26%에 달하는 4만여 대가 고장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군사정보를 담은 비밀문서를 주고받을 때 평문(平文·보통의 글)을 암호로 바꿔주거나, 각 군 지휘관들이 비화(秘話·비밀대화) 휴대전화 등을 통해 주고받는 2급 군사기밀 관련 통화 내용을 북한군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암호화하는 각종 암호장비의 상당수가 한동안 제 구실을 못한 것이다.
특히 고장 난 암호장비 4만여 대 중 1만2000대 이상의 수리 기간이 30일에서 최장 6개월이어서 각종 통신장비들이 이 기간에 암호장비 없이 방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기밀 도청 및 가로채기를 막아낼 방패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암호장비를 사용해도 암호화가 전혀 안 되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올해 5월 ‘암호장비 취약성 평가’에선 팩스에 사용되는 일부 암호장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평가 결과 정보 1000여 건 중 10여 건은 암호로 바뀌지 않고 원문 그대로 드러났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군사기밀을 암호 해독장치 없이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 평가는 암호장비 85종 중 2종을 뽑아서 실시한 것이어서 휴대전화 부착 암호장비 등 다른 암호장비까지 확대하면 더 큰 부실이 드러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경대수 의원은 “말로는 ‘통신보안’을 외치면서 군 당국이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은 점은 아주 무거운 과오”라고 지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