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옥천군은 멧돼지 피해로 골머리를 앓았다. 시도 때도 없이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가 농경지를 휩쓸고 다니면서 농작물을 먹어치웠다. 군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보상은 2014년 40건(4만2575m²), 2015년 37건(5만3129m²), 지난해는 104건(9만4974m²)으로 급증했다. 멧돼지는 때론 주택가까지 나타나 주민들을 공격했다.
지난해 멧돼지 275마리를 포획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피해는 줄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굶주린 멧돼지에게 먹이를 주자’는 색다른 아이디어가 나온 것. 굶주린 멧돼지에게 먼저 먹을 것을 준다. 멧돼지가 배가 부르면 굳이 농경지나 주택가로 내려오지 않는다. 간단한 논리다.
옥천군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멧돼지가 출몰하고 있다. 개체수는 많아진 반면 서식지와 먹이는 줄었기 때문이다. 멧돼지는 한반도의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다. 늑대나 호랑이 같은 상위 포식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번식력도 강해 암컷 멧돼지가 150여 일간 임신 기간을 거친 뒤 한 번에 8∼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이 때문에 전국엔 약 30만 마리의 멧돼지가 살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등산객의 야산 출입이 늘면서 멧돼지 서식지도 부족해졌다.
옥천군의 파격실험은 성공했을까? 1차적으로는 멧돼지 하산을 막는 효과를 봤다. 현장에서 고구마와 당근을 먹고 산속으로 되돌아간 멧돼지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일대 과수원 근처에 멧돼지가 출몰하는 횟수도 줄었다. 옥천군 곽경훈 환경기획팀장은 “정확한 효과 분석은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추수기에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평가분석 결과 효과가 있으면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효과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했다. 멧돼지의 학습효과로 농작물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 국립공원관리공단 정상욱 북한산사무소 자원보전팀장은 “당장은 멧돼지가 먹이를 먹고 내려오지 않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점차 많은 멧돼지가 냄새를 맡고 몰리게 될 것”이라며 “끊임없이 많은 양의 먹이를 놓아야 해서 지속 효과는 미지수다. 울타리 등 방재시설을 제대로 설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정책은 항상 논란이 됐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월동을 위해 지역을 찾는 독수리(멸종위기종 2급) 먹이주기를 실시했다. 강원 고성군 진부령 일대에서는 주기적으로 산양 먹이주기 행사가 겨울에 펼쳐진다. 이때마다 ‘먹이 찾기가 어려운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과 ‘먹이 주기에 길들여지면 야생 본능을 잃어 생존해나가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고라니 멧돼지 등 산속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자칫 몸이 약해 자연도태돼야 할 개체까지 살아남게 된다. 반면 이들의 상위포식자인 육식동물은 개체 수가 적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멧돼지같이 유해종으로 지정된 동물, 산양처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동물 등 야생동물별로 맞춤형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연구관은 “일본의 경우 국내에서는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연간 4000마리씩 포획한다. 천연기념물이던 산양은 이제는 너무 많아져 포획을 허가하기도 했다”며 “상황에 맞춰 보호 가치가 높은 종은 먹이 부족을 인위적으로라도 막고, 그렇지 않은 종은 검증된 개체 수 조절 전략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