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사또 큰 잔치를 베풀 때 명기명차 다 모아서… 가성은 요란하여 반공에 높이 떴다.”(장자백 창본 춘향가 중)
춘향전의 악역 변사또의 생일 축하연을 묘사한 부분이다. 제아무리 조선시대 수령(사또)이라 하더라도 기생과 광대들을 관아로 불러들여 생일잔치를 벌일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이 같은 일을 한다면 당장 주민소환 요구가 빗발칠 것이 뻔하다.
하지만 당대 18세기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했다고 한다. 김현주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당시 지방 관청의 공식 연회는 신임 축하, 외교사절 영접 등에 국한됐지만 사또는 왕의 대리자로서 각 지역의 절대 권력자였다”며 “비슷한 시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평안감사 향연도’를 보면 변사또의 성대한 축하연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한 번쯤 접했지만 제대로 분석하며 보는 이는 거의 없는 춘향전. 김 교수가 최근 펴낸 ‘춘향전의 인문학’(아카넷)은 당대의 관점에서 춘향전을 새롭게 조명했다. 김 교수는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춘향전을 이해하는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며 “춘향전의 시대 배경에 독자들이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당시 제작된 지도, 문서, 그림 등과 함께 분석했다”고 밝혔다.
“옥중에 들어가서 부서진 죽창 틈에 살쏘느니… 벼룩 빈대 만신을 침노한다.”(열녀춘향수절가 중)
변사또가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를 투옥시키는 유명한 장면이다. 수청을 거부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정답은 ‘아니요’다. 조선의 사또는 지방의 사법·행정권을 총괄한 직위였다. 그러나 이들의 형벌권은 태형 이하의 사건에만 국한됐다. 투옥 등 중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각 도의 관찰사 소관이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춘향은 퇴사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하고….”(열녀춘향수절가 중)
춘향의 신분 변화는 극적이다.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어머니 월매가 천민이었던 기생 출신인 탓에 춘향 역시 천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이몽룡과의 혼인 후 ‘정렬부인’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정렬부인은 절개와 지조를 지킨 여성에게 내리는 명예직 신분이다. 김 교수는 “천민인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가 숙종의 눈에 들어 연잉군(훗날 영조)을 낳아 인생 역전에 성공한 적도 있다”며 “엄격한 신분제였던 조선 사회에서 춘향의 신분 상승은 민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원모 유원모기자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