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리슐리외관에서 만난 김민중 문화재 복원사는 루브르 연구소장과 다음 날 열릴 콘퍼런스를 최종 점검 중이었다.
3년 전 처음 루브르 박물관에서 문화재 복원 용지로 한지(韓紙)를 소개했을 때 냉랭했던 반응을 떠올리던 김 씨는 “오르세와 퐁피두 미술관 문화재 복원 관련자들도 참석할 예정”이라며 “한지를 전 세계 박물관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복원사로 일하며 한지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콘퍼런스 준비를 맡은 서른 살의 당찬 한국 청년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지난주 처음으로 문화재 복원용 한지를 샀다. 올 4월 박물관이 전주시가 제공한 한지를 사용해 19세기 바이에른 왕국의 막시밀리앵 2세 책상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것이 계기가 됐다. 책상 중앙 서랍의 자물쇠 주위를 둘러싼 부분이 손상되자 한지로 완벽하게 복원해 현재 전시 중이다.
루브르 박물관이 복원용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4년 김 씨가 인턴으로 루브르 복원실에 참여하면서부터다. 14세 때 할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와 정착한 김 씨는 파리8대학 미술품 보존 및 복원학과를 졸업하고 박물관에 들어갔다.
그는 인생을 바꾼 사건으로 2008년부터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을 발굴한 박병선 박사 밑에서 외규장각 의궤 반환 작업에 참여한 일을 꼽았다. 김 씨는 박 박사를 3년간 도우면서 한국 종이에 눈을 떴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전 세계 문화재 복원에 쓰이는 용지는 일본 종이 화지(和紙)가 장악하고 있다. 화지를 이용한 복원에 익숙한 박물관 복원사들은 김 씨를 향해 ‘우수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한지와 화지를 물에 적셔 복원력의 차이를 실험으로 보여주며 한지가 수축과 변형이 적어 오래 보존되고, 접착력이 좋아 복원에 유리하다고 설득했다. 한지의 영구성에 매료된 아리안 드 라샤펠 루브르 연구소장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김 씨는 2015년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를 빠질 수 있었지만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박 박사는 생전에 늘 ‘국가가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우리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해 달라’고 하셨다”며 “전 세계 박물관 복원에 쓰이는 화지를 한지로 다 바꾸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정민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