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만남의 광장 휴게소 주차장. 현대자동차 연구원이 수소연료전기자동차 ‘넥쏘(Nexo)’의 운전석에 올라 운전대에 있는 크루즈(자율주행)와 세트(설정) 버튼을 눌렀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자 차가 스스로 움직이더니 휴게소를 빠져나갔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량은 마치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질주를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은 연구원 손은 여전히 운전대에서 떨어져 있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일주일 앞두고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를 이용한 고속도로 자율주행 시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현대차는 2일 차세대 수소전기차 넥쏘 3대, 고급세단 제네시스 G80 자율주행차 2대를 투입해 서울에서 강원 평창까지 약 190km의 고속도로 구간을 자율주행하는 시연에 성공했다고 4일 밝혔다. 자율주행 차량 5대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출발했다. 이후 신갈 분기점을 거쳐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한 뒤 대관령 나들목으로 빠져나가 최종 목적지인 대관령 요금소에 도착했다.
수소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은 둘 다 미래 자동차 산업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수소전기차는 우주에 무한한 ‘수소’를 연료로 달리면서 공해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고, 대기 정화능력까지 갖춰 ‘궁극의 친환경차’로 불린다. 자율주행 기술은 각국이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전 세계 기업 중 이 두 분야를 모두 연구하고 있는 곳은 현대차와 일본 도요타 정도다. 수소전기차로 자율주행 기술을 실제 선보인 것은 전 세계에서 현대차가 이날 처음이다.
이날 차량에 탑재된 자율주행 기능은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가 분류한 자율주행 0∼5단계 중 4단계(High Automation)에 해당한다. 이는 ‘정해진 조건과 상황’에서 운전자의 조작이나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속도, 방향을 조절하며 달리는 단계다. 최종 5단계(Full Automation)는 돌발 상황 등 모든 상황에서 사람이 필요 없는 완벽한 무인(無人)자동차다.
자율주행차는 사람보다 더 정교한 운전 능력을 보여줬다는 게 현대차의 평가다. 평상시에는 흐트러짐 없이 차선을 똑바로 유지해 달리다가 필요할 때는 알아서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을 바꿨다. 앞 트럭이 너무 천천히 달리자 이를 인식하고 추월차로로 차선을 바꾼 뒤 속도를 높여 추월하기도 했다. 터널 7곳을 지날 때는 안전 규정에 맞춰 달렸고 요금소, 나들목, 분기점에서도 상황에 맞춰 스스로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며 목적지를 찾아갔다.
그동안 국내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제한된 속도’로 자율주행 실험을 한 적은 있었다. 이날처럼 100km가 넘는 장거리 코스를 최고제한속도(시속 100∼110km)까지 높여가며 자율주행을 한 것은 처음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에서 수백 번에 걸쳐 수십만 km에 달하는 시험주행을 진행하며 데이터베이스를 모으고 성능을 업그레이드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넥쏘를 시승하고 “우리 수소차, 완전자율주행차가 세계적인 수준에 와 있음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자율주행 기술은 다양한 수준으로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 친환경차에 적용됐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그중 수소전기차가 자율주행에 가장 적합한 차량이라고 꼽는다. 자율주행 시스템 운영에는 많은 전기가 필요한데, 수소차는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세계 수소차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차는 내달 양산용 차세대 수소전기차를 정식 출시한다. 이 수소전기차는 한 번 충전하면 600km 넘게 달릴 수 있고 충전시간은 5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대차 측은 “2030년까지 완전한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의 꿈이 실현된다면 불과 12년 안에 우리는 도로 곳곳에서 스스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량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진우 현대차 지능형안전기술센터장은 “자율주행 기술은 좀 더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평창 시내에서 자율주행 체험차량을 운영한다.
이은택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