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침대’ 사태는 ‘음이온 맹신’ 현상이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이온 건강설’의 발상지 일본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음이온 제품의 비과학성을 지적해온 일본의 대표적 비판가 기쿠치 마코토 일본 오사카대 물리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음이온의 건강 효능 가설은 과학적으로 확립되지 않았으며, 시장에서 팔리는 음이온 제품은 사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생체와 사회를 연구하는 통계물리학자인 기쿠치 교수는 먼저 음이온 관련 용어부터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건강 제품과 관련이 있는 음이온을 ‘마이너스이온’이란 일본식 대중 영어로 따로 부른다고 말했다. 반면 화학에서 말하는 진짜 음이온은 ‘부(負)이온’ 또는 외래어를 차용해 ‘아니온(anion)’으로 구분한다. 제품에 쓰이는 음이온이 그 자체로 과학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그 역시 음이온 건강설은 증명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는 주장, 즉 ‘미(未)과학(원형과학)’의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기쿠치 교수는 일본 내 음이온의 인기가 1990년대에 시작돼 20세기 말∼21세기 초에 정점을 찍고,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기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음이온 붐 사태가 ‘2라운드’로 넘어갔다”며 “제품 수는 줄었지만 새로운 전자제품이 등장하며 또 다른 붐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음이온 침대와 팔찌, 심지어 속옷과 화장품 등 광석 함유 제품이 잘 팔리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주로 전기 방전으로 대기를 음이온화하는 공기청정기와 헤어드라이어 등이 유행이다. 특히 헤어드라이어는 거의 모든 제품이 음이온 방출 기능이 있어 음이온 기능이 없는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문제는 이들 제품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음이온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쿠치 교수는 “일본의 전자제품 제조사들은 ‘플라스마 클러스터 이온’이나 ‘나노 E 이온’ 같은 용어를 쓴다”며 “이들은 시장에서 기존 음이온보다 더 좋은 이온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일부는 실제로도 잘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기쿠치 교수는 “음이온 관련 설명 가운데 유일하게 근거가 있는 것은 양전하를 띤 대기 중 미세먼지를 음이온이 중화시켜 서로 뭉치게 해서 제거하는 것뿐”이라며 “하지만 이것은 직접적인 건강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윤신영동아사이언스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