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봉황에서부터 주작과 해치, 호랑이와 거북까지.’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자 해마다 600만 명 이상 찾는 경복궁. 무려 68마리의 동물상이 법전인 근정전을 웅장하게 감싸고 있다. 검소함과 절제라는 유교이념이 깃든 조선 시대의 이전 왕실 건축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395년 경복궁이 처음 지어질 때와는 달리 1867년 고종이 즉위한 이후 중건되면서 이처럼 다양한 동물이 배치됐다.
김성혜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최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학술지 ‘한국학연구’에 실은 논문 ‘한국근대 답도 건축물에 배치된 동물의 상징성 연구’를 통해 “구한말 조선궁궐에 배치된 동물상은 무너진 국력을 회복하고픈 고종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눈여겨 볼 것은 궁궐 건축물 중에 왕(황제)만이 지날 수 있는 계단 길인 답도(踏道)에 배치된 동물들을 연구했다. 경복궁 근정전뿐 아니라 고종의 재위 기간 지어진 경복궁의 집옥재, 경운궁(덕수궁) 중화전, 원구단 등의 답도에 배치된 동물상에는 ‘독립’ ‘근대화’ ‘법치’라는 독특한 코드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경복궁 근정전 앞 답도의 중앙에는 모든 새의 으뜸이자 고귀하고 성스러운 기운을 나타내는 봉황이 새겨져 있다. 봉황은 1395년 경복궁이 처음 지어질 땐 존재하지 않았다. 고종이 1867년 즉위한 이후 궁을 중건하며 심혈을 기울인 조각상이다. 세도정치로 인해 무너진 왕권과 국력을 회복하겠다는 고종의 강력한 염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답도의 동물상은 단순한 조형미를 위해 배치한 게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담은 상징물”이라며 “근대화를 통해 자주 독립 국가를 꿈꾼 ‘고종의 다빈치 코드’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근대 왕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동물 문양은 경복궁 집옥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81년 창덕궁 경내에 지어진 후 1891년 현재의 경복궁 자리로 옮겨진 집옥재는 고종의 개인서재이자 각국 공사들을 접견한 집무실. 답도는 원래 법전이나 법문에만 설치됐지만 유일한 예외가 집옥재다.
집옥재 답도 중앙에는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맞물리는 두 마리의 용이 등장한다. 용은 왕(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김 교수는 “경복궁이 중건된 18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영향력이 컸지만 188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고종이 실권을 잡았다”며 “집옥재 천장과 벽면 등에도 다양한 용 장식을 배치함으로써 용으로 대변되는 왕권 강화의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원구단을 건설하고, 이곳에서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했다. 황제만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공간인 원구단에는 그에 어울리는 상징물들이 필요했다. 원구단과 황궁우 사이에 놓인 삼문(三門)의 답도에 쌍룡과 해치 두 종류의 동물만을 배치한 것. 쌍룡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동물이고, 해치는 시비곡직을 가리며 불의를 보면 뿔로 받아 물리친다는 법과 정의의 화신이다. 전제황권과 근대적인 법치주의 국가를 지향한 고종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유원모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