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도 의지만 있으면 신속 핵폐기 가능”
“남아공은 핵능력을 꽤 빠르게 해체할 수 있었습니다. 1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북한도 상대적으로 단기간 내에 비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와 핵 관련 시설을 폐기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직접 해봤기 때문에 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다만 그는 “이것이 가능하려면 핵무기를 해체하겠다는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북한의 의지만 있다면 남아공과 같은 신속한 비핵화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기의 회담으로 꼽힌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봤을까.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인 접근을 지지하고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을 환영한다”면서도 “한 번의 회담으로 복잡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는 조심해야 한다”며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했다. 특히 그는 북-미 양국 정상이 서로 다른 이유로 회담에 합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정치적인 성공을 기대했습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다뤄지고 싶었고, 국제사회가 가하는 제재의 압박을 완화하길 원했습니다. 또한 양측은 무엇이 합의됐고, 합의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잠재적인 핵무기들을 신속하게 해체하길 기대하는 반면 김 위원장은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응할 의도가 거의 없을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 말 남아공과 현재 북한의 상황은 비슷한 점이 있다.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차별하는 흑백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당시 남아공은 국제 사회의 제재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이웃 국가인 앙골라에 쿠바군이 주둔하면서 남아공 정부는 체제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상황이다. 북한도 인권 문제로 전세계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 일본 등 미국의 우방국에 둘러싸인 북한은 이를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핵무기를 개발해 세계와 맞서 싸우고 있다.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소련이 붕괴하고 앙골라에서 쿠바 군이 철수하면서 소련으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에 남아공의 핵무기를 없앨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워게임’(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지칭) 중단,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가 북한 비핵화의 전제조건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조심스러운 대답을 내놨다.
“그러한 종류의 제스쳐는 종종 국제적인 합의를 촉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비핵화로 향하는 구체적인 단계 이행에 따른 보답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미국은 이러한 제스쳐가 한국과 (동북아 지역의) 다른 동맹국들에게 잘못 해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핵 보유 필요성 납득 안돼 결국 자진 폐기
남아공은 1970년대 초부터 비밀리에 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핵개발 이유에 대해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남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한 위협이 점점 커졌고,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가로부터의 보호에만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남아공의 비밀 핵개발 프로젝트를 인지한 것은 약 10년 뒤였다.
“1980년대 초 광물에너지부(Mineral and Energy Affairs)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남아공의 핵프로그램에 대해 처음 듣게 됐습니다. 제 역할 중 하나는 핵프로그램의 핵심 요소인 핵농축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만 알아야 한다’는 엄격한 방침 때문에 당시 핵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이 실제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남아공 정부의) 전략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생사의 기로에 놓였을 때 서방 국가들이 개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전세계에 남아공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1989년 9월 대통령직에 오른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남아공 역사에 기록될 두 가지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핵무기와 아파르트헤이트를 폐기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남아공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게 된다.
“저는 핵무기 프로그램의 목적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핵무기는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접전(bush warfare)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웃 국가의 수도에 핵폭탄을 날린다는 아이디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국제 사회와의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핸 두 가지 주요한 우선순위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는 것이었습니다.”
1991년 7월 NPT에 가입한 이후 남아공은 그해 11월부터 2년 반동안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며 본격적인 핵폐기에 나선다. 그는 “비핵화 과정이 잘 진행되어 모든 핵분열 물질의 정확한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고, IAEA의 절차에 따라서 후속 제어할 수 있었다”며 “핵물질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도 원천 차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93년 3월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남아공이 핵무기 6개를 생산해 보유했으나 모두 폐기했고 개발 정보도 모두 파기했다”고 밝혔다.
○ 국제 관계 정상화 위해선 북한 인권 개선 필요
‘핵무기 완전 폐기’를 선언한 1993년,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기한 공로를 인정받은 덕이었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도 북한 국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어려운 선택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아공의 경우, 국가 안보의 주요한 위협은 외부의 공격보다도 수백년간 분리되어온 남아공 국민들 사이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서 왔습니다.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뒤에야 우리는 국민들, 이웃 국가들, 그리고 국제 사회와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었습니다. 남아공의 문제가 모든 국민들에게 헌법적 권리를 확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듯, 북한도 국민들에게 그런 권리를 확장하는 것과 관련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북한은 한국 및 국제 사회와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잇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핵무기나 무장 군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 그는 “북한은 베트남이나 중국 같은 시장 개혁을 고려할 텐데 이는 정치적 개혁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큰 진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의 역할에 대해 “북한 비핵화와 함께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북한 정권의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한국은 군사적 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하며 주요한 파트너인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위은지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