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면 이런 표정이 나올까? 입은 분명 웃고 있는데, 눈은 울고 있는 이 남자. 이런 걸 ‘웃프다’고 해야 할까? 그림 속 남자는 마치 절대 절망의 순간에 무심코 헛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오스트리아의 반 고흐’라 불리는 리하르트 게르스틀이 25세 때 그린 자화상이다. 도대체 젊은 화가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표정의 자화상을 그린 걸까?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게르스틀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화가가 되기를 꿈꿨다. 명문 중·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해 중퇴했고, 15세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여기서도 지도 교수와의 마찰 등으로 중퇴하고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미술가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지만 음악은 좋아해 오히려 음악가들과 어울렸다. 1907년경 같은 건물에 살던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와 가깝게 지낸 게 화근이었다. 게르스틀은 쇤베르크에게 미술을 가르쳐주고 쇤베르크 가족과 친구들의 초상화도 종종 그려줬다. 그러던 1908년 여름, 그는 여섯 살 연상이던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데와 그만 사랑에 빠져 함께 빈으로 떠났으나 그해 10월 마틸데가 남편 곁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다시 혼자가 됐다. 결국 게르스틀은 사랑도 친구도 모두 잃고 삶의 이유도 상실했다.
실연의 상처, 상실과 고독, 작가로서 패배감에 시달리던 그는 1908년 11월 4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자살 직전 작업실에 불을 질러 그림과 편지, 서류 등은 모두 불태웠다. 당시 화재로 상당수의 그림이 소실됐지만 다행히 불에 타지 않고 남은 회화도 많았다. ‘웃는 자화상’도 그중 하나다. 깊은 절망 속에서 허탈하게 웃고 있는 이 자화상은 마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게르스틀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고통이 너무 크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듯, 절망이 너무 깊으면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