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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비밀주의, 국민수준에 맞춰야

Posted July. 30, 2018 09:35,   

Updated July. 30, 201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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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찰청 본관 건물 옆에 지상 6층 규모로 2008년 10월 완공된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이 건물이 공사 중일 때 대법원 청사에서 북쪽 대검찰청 방면 사무실에선 판사들이 대화를 나눌 때 커튼을 내리곤 했다. 대검에 국내 최대 규모의 디지털 분석 장비가 설치된다는데 혹시라도 검찰이 최신 감청 장치로 대화 내용을 엿들을까 걱정해서였다고 한다.

 군사 독재 시절부터 감시 대상이었던 법원이 얼마나 보안을 중시하는지, 그리고 검찰 동향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 당시로선 엉뚱한 의심만은 아니었다. 2005∼2006년 검찰의 국가정보원 휴대전화 도청 수사 때 국정원이 이동식 도청 장비로 주요 기관을 감시한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청 사무실에서 커튼을 내리고, 음악을 켜놓고 얘기를 나눈다는 검사를 여럿 만났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대법원 청사 11층에서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총 13명이 모이는 최고 법률심인 전원합의체 회의가 열린다. 이곳은 정기적인 도청 장치 설치 여부 점검 대상이다. 사무실이 대검과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113m² 크기의 회의실에는 원탁과 의자 13개밖에 없다. 대법원 내 다른 곳의 회의는 전체가 녹음되거나 일부 요지라도 기록된다. 유독 전원합의체 회의엔 속기사도, 녹음 장치도 금지다. 

 미국은 어떨까. ‘흑백 분리교육 철폐’ 판결을 주도한 얼 워런 연방대법원장이 1954년 판결 초고에 ‘만장일치로’라고 직접 쓴 메모가 공개됐고, 1973년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처음 인정한 판결문을 쓴 해리 블랙먼 연방대법관은 그 판결문 초안 등 5000만 건을 도서관에 기증했다. 은퇴한 대법관들이 합의 과정을 회고한 책을 여러 권 썼다. ‘지혜의 기둥’으로 불리는 이들의 합의 과정이야말로 ‘미국 역사의 보물’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 때 전원합의체 회의를 녹음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나 “자유롭게 발언하고 토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필자가 대법관 몇 명에게 “우리도 미국과 같은 책이 여러 권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법이 금지하고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 당시 그들이 근거로 든 관련 법 조항은 법원조직법의 ‘합의 과정은 비공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 회의록을 아무리 뒤져도 1949년 8월 15일 처음 시행된 이 법 조항을 누가, 어떤 취지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60차례가 넘는 법 개정에도 이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검찰은 최근 대법원에 전·현직 대법관의 하드디스크와 이메일 기록 등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합의 과정이 누설될 수 있다”며 거부하고 있다. 대법관들이 회의 전 쟁점 사항을 이메일로 주고받는다는 게 이번에 처음 알려졌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때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과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 사건이 재판거래 의혹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검찰로서는 재판 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단서가 회의 참석자의 기억 외엔 아무것도 없다.

 법원행정처 문건과는 다른 이유로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재판거래 의혹이 불식될 텐데, 기록이 없다면 결국 국민은 의심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관련법을 바꾸면 어떨까. 만약 합의 과정이 누설돼 법관이 불이익을 받는 것 때문이라면 기록으로 남긴 뒤 10년, 20년, 30년 뒤 공개하면 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대법원도 예외일 수 없다.


정원수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