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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위한 파괴

Posted October. 18, 2018 08:51,   

Updated October. 18, 201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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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영국 런던 소더비경매장에서 벌어진 15억 원짜리 뱅크시 작품의 ‘셀프 파쇄’ 사건은 미술사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영국 미술가 뱅크시가 낙찰된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파손시켜 ‘경매 도중 탄생한 최초의 미술품’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면, 독일 미술가 마르틴 키펜베르거는 비싼 작가의 그림을 훼손해 자신의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사진 속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회색 추상화들과 함께 회색의 커피 테이블 하나가 전시돼 있다. 이 심심한 회색 그림들은 독일 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70년대에 그린 ‘회색 회화’ 연작이다. 그는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으로, 추상화 한 점의 최고가는 무려 500억 원이 넘는다. 독일의 가장 ‘문제적’ 작가 중 한 명인 키펜베르거는 1987년 리히터의 회색 그림 한 점을 사서 싸구려 커피 테이블로 만들어버렸다. 기획과 디자인은 본인이 하고, 만드는 건 조수를 시켰다. 그림에 틀도 씌우고 철제 다리들도 박아서 만든 테이블은 딱히 기능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유명 작가의 비싼 그림으로 만든 30대 무명 작가의 조각은 재료값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리히터 작품가로 사서 변형 후 키펜베르거 작품가로 판 것이니, 이는 미술품 창작의 관습과 미술 시장의 법칙을 완전히 깨버리는 행위였다. 또한 작가의 명성이 가격을 지배하는 미술시장에 대한 키펜베르거식 비판과 풍자였다.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는 피카소의 말을 그는 뱅크시보다 30년 이상 앞서 실행에 옮긴 셈이다.

 남의 작품뿐 아니라 ‘자기파괴적’ 성향도 강했던 그는 1997년 술이 부른 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44세였다. 작가 사후 생전에 1만 달러 정도였던 그의 작품가는 이제 1000만 달러가 넘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또 다른 젊은 미술가가 이 커피 테이블을 파손시켜 새로운 형태로 만든다면, 작품의 최종 저작권자는 누가 되는 걸까? 가격은 더 올라갈까?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