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심신미약으로 봤는지 설명 없는 조두순 판결문
Posted November. 26, 2018 08:56,
Updated November. 26, 2018 08:56
왜 심신미약으로 봤는지 설명 없는 조두순 판결문.
November. 26, 2018 08:56.
by 신광영 neo@donga.com.
‘심신미약’이라는 법률 용어를 국민 상식으로 각인시킨 조두순 판결에는 심신미약이 딱 한 번 등장한다. 2009년 1심 판결문 4쪽 법령적용 항목에 ‘심신미약 감경’이란 여섯 글자가 적혀 있을 뿐이다. 재판부가 심신미약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조두순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면 하기 어려웠을 언행이 자세히 나온다. 그는 오전 8시 반 등교하던 나영이(당시 8세)에게 “교회에 다녀야 한다”며 교회 화장실로 유인해 범행했다. 30분 뒤 귀가해서는 부인에게 “사고를 쳤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던 정황이다. 심신미약 감경의 위력은 대단했다. 재판부도 조두순의 죄를 무겁게 보긴 했다. 강간상해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데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택했다. 그런데 심신미약 감경을 거치며 반전이 일어났다. ‘무기징역을 감경할 때는 7년 이상 징역을 택한다’는 당시 법규에 따라 징역 12년으로 줄었다. 1심은 이 결정을 하며 심신미약 근거를 밝히지 않았지만 2심, 3심은 근거를 따지지 않았다. 조두순 판결 논란 이후 음주감경 판결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 인정 근거를 판결문에 제대로 적시하지 않는 관행은 여전하다. 최근 5년간 살인 피고인 음주감경 판결은 26건. 이 중 인정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게 58%(15건)에 달한다. 객관적 판별 기준이 없어 설명할 방법이 마땅찮다는 게 판사들의 항변이다. 일부 판사는 죄질에 비해 법정형이 너무 높아 가혹한 판결을 해야 할 때 ‘심신미약으로의 도피’를 감행하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음주감경 규정을 ‘용도변경’해서 형을 깎아주는 것이다. 최근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배경에는 법원 판단을 믿기 어렵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불신이 커지면 ‘책임 없이 처벌 없다’는 형법의 기본원칙까지 흔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봉건시대에는 타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경위와 무관하게 전적인 책임을 물었다. 가해자 혼자 죗값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족까지 벌하는 연좌제가 정당화됐던 이유다. 범행 결과만 놓고 무조건적 복수를 하기보다 가해자가 책임져야 할 만큼만 벌하자는 게 근대 형법의 원칙이다. 범행 당시 정신질환 등 불가항력으로 사리 분별과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었다면 일반 피고인보다 가볍게 처벌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피해자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가해자가 누구든 참혹한 피해에 신음할 뿐이다. 이에 비해 법관은 피해의 무게 못지않게 죄의 무게를 따진다. 둘이 수평을 이루면 좋겠지만 심신미약 감경은 피해에 비해 죗값이 가벼워지는 불균형을 수반한다. 국가의 형벌권 독점은 피해자가 사적 복수를 자제하고 공권력에 처벌을 위임한다는 사회계약에 따른 것이다. 국가는 피해자에게 처벌 결과를 납득시킬 의무가 있다. 심신미약으로 판단해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줬다면 그로 인해 ‘책임지지 않는 책임’은 국가가 메워야 한다. 설득력 있는 기준을 세우고 감경된 처벌을 치료 등 다른 수단으로 대체하는 조치가 있어야 피해자가 원통함을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 기준은 아직 모호하고 정신감정과 치료감호를 할 수 있는 기관은 국립법무병원 뿐이다. 이 열악한 인프라를 두고 심신미약 감경 근거를 밝히지 못하는 판사만 탓할 수도 없다. 2년 뒤인 2020년 12월 13일 조두순이 출소한다는 소식에 여론이 다시 들썩인다. 조두순은 그 자체로 흉악범이지만 세상에 일찍 나오게 되면서 더 흉측해졌다. 부실한 사법체계는 괴물을 더 큰 괴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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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이라는 법률 용어를 국민 상식으로 각인시킨 조두순 판결에는 심신미약이 딱 한 번 등장한다. 2009년 1심 판결문 4쪽 법령적용 항목에 ‘심신미약 감경’이란 여섯 글자가 적혀 있을 뿐이다. 재판부가 심신미약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조두순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면 하기 어려웠을 언행이 자세히 나온다. 그는 오전 8시 반 등교하던 나영이(당시 8세)에게 “교회에 다녀야 한다”며 교회 화장실로 유인해 범행했다. 30분 뒤 귀가해서는 부인에게 “사고를 쳤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던 정황이다.
심신미약 감경의 위력은 대단했다. 재판부도 조두순의 죄를 무겁게 보긴 했다. 강간상해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데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택했다. 그런데 심신미약 감경을 거치며 반전이 일어났다. ‘무기징역을 감경할 때는 7년 이상 징역을 택한다’는 당시 법규에 따라 징역 12년으로 줄었다. 1심은 이 결정을 하며 심신미약 근거를 밝히지 않았지만 2심, 3심은 근거를 따지지 않았다.
조두순 판결 논란 이후 음주감경 판결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 인정 근거를 판결문에 제대로 적시하지 않는 관행은 여전하다. 최근 5년간 살인 피고인 음주감경 판결은 26건. 이 중 인정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게 58%(15건)에 달한다. 객관적 판별 기준이 없어 설명할 방법이 마땅찮다는 게 판사들의 항변이다. 일부 판사는 죄질에 비해 법정형이 너무 높아 가혹한 판결을 해야 할 때 ‘심신미약으로의 도피’를 감행하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음주감경 규정을 ‘용도변경’해서 형을 깎아주는 것이다.
최근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배경에는 법원 판단을 믿기 어렵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불신이 커지면 ‘책임 없이 처벌 없다’는 형법의 기본원칙까지 흔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봉건시대에는 타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경위와 무관하게 전적인 책임을 물었다. 가해자 혼자 죗값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족까지 벌하는 연좌제가 정당화됐던 이유다. 범행 결과만 놓고 무조건적 복수를 하기보다 가해자가 책임져야 할 만큼만 벌하자는 게 근대 형법의 원칙이다. 범행 당시 정신질환 등 불가항력으로 사리 분별과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었다면 일반 피고인보다 가볍게 처벌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피해자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가해자가 누구든 참혹한 피해에 신음할 뿐이다. 이에 비해 법관은 피해의 무게 못지않게 죄의 무게를 따진다. 둘이 수평을 이루면 좋겠지만 심신미약 감경은 피해에 비해 죗값이 가벼워지는 불균형을 수반한다.
국가의 형벌권 독점은 피해자가 사적 복수를 자제하고 공권력에 처벌을 위임한다는 사회계약에 따른 것이다. 국가는 피해자에게 처벌 결과를 납득시킬 의무가 있다. 심신미약으로 판단해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줬다면 그로 인해 ‘책임지지 않는 책임’은 국가가 메워야 한다. 설득력 있는 기준을 세우고 감경된 처벌을 치료 등 다른 수단으로 대체하는 조치가 있어야 피해자가 원통함을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 기준은 아직 모호하고 정신감정과 치료감호를 할 수 있는 기관은 국립법무병원 뿐이다. 이 열악한 인프라를 두고 심신미약 감경 근거를 밝히지 못하는 판사만 탓할 수도 없다.
2년 뒤인 2020년 12월 13일 조두순이 출소한다는 소식에 여론이 다시 들썩인다. 조두순은 그 자체로 흉악범이지만 세상에 일찍 나오게 되면서 더 흉측해졌다. 부실한 사법체계는 괴물을 더 큰 괴물로 만든다.
신광영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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