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돈은 안락을 주지만 막대한 돈은 권력을 준다.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은 15, 16세기 피렌체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였다. 대를 이어 예술을 후원했던 이 집안은 피렌체에 르네상스 미술이 꽃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시대 권력자들의 취향을 작품에 잘 반영할 줄 알았던 산드로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의 총애와 후원을 한 몸에 받은 화가였다. 이 그림은 보티첼리에게 명성을 안겨준 첫 작품으로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성서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화가의 솜씨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탁월한 구성과 생생한 색채, 인물의 사실적 표현이 뛰어난 수작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림이 좀 이상하다. 예수가 태어난 곳은 가정집의 초라한 마구간이 아니라 폐허가 된 고대 건축물이고, 동방박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복장도 예수 시대의 것이 아니라 15세기의 화려한 피렌체 의상이다. 게다가 동방박사 세 사람의 얼굴은 당시 잘 알려진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다. 백발에 검은 옷을 입고 아기 예수 앞에 앉은 이는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코시모, 가운데 앉은 붉은 망토를 입은 이는 그의 아들 피에로, 그 옆은 또 다른 아들 조반니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 동방박사로 표현된 이들은 모두 사망했고,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가 살아있는 권력자였다. 그는 화면 맨 왼쪽의 붉은 상의를 입은 젊은 기사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로렌초가 주문한 걸까? 아니다. 오른쪽 무리들 속에서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남자, 가스파레 델 라마다. 환전업으로 자수성가한 그는 메디치 가문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이 그림을 주문한 것이었다. 최고 권력자를 향한 충성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럼 화면 맨 오른쪽에서 관객을 응시하며 이 모든 상황을 알려주는 황금색 망토의 사내는 누굴까? 바로 보티첼리 자신이다. 그 역시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