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포수 양의지는 11일 4년 125억 원에 NC로 팀을 옮겼다. 원소속 구단 두산 역시 100억 원 넘는 돈을 제시했지만 양의지는 고심 끝에 NC를 선택했다. 그런데 여러 차례의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양의지가 구단과 직접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두산의 안방인 서울과 NC의 홈인 창원을 오가며 협상을 벌인 주인공은 양의지의 에이전트인 이예랑 리코스포츠 대표였다.
이 대표는 또 다른 SK 포수 이재원의 계약도 성사시켰다. 이재원은 6일 원소속팀 SK와 4년 69억 원에 사인했다. 올해 FA 시장의 포문을 연 NC 내야수 모창민(3년 최대 20억 원)의 에이전트 역시 이 대표였다.
리코스포츠 소속 FA 선수 3명의 계약 총액은 214억 원에 이른다. KBO리그 에이전트 수수료 상한액은 계약액의 5%로 정해져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리코스포츠가 벌어들인 수수료는 최대 10억7000만 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또 다른 FA 투수 노경은의 계약을 위해 구단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처럼 KBO리그에도 에이전트의 시대가 온 것일까.
○ 첫발 뗀 에이전트 제도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에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된 원년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제3차 이사회에서 선수대리인(에이전트) 제도를 올해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이전에도 몇몇 에이전트가 선수들의 계약을 돕곤 했지만 KBO와 구단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활동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의 자격시험을 통과해 공인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12월 첫 시험에서 91명이 합격했고, 올해 7월 2회 시험에서 37명이 합격했다. 이 가운데 50명가량이 현직 변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전트의 주 업무는 선수 계약 교섭 및 연봉 계약 체결이다. 연봉 조정 신청 및 조정도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선수들이 연봉 협상 때마다 구단 실무자와 마주 앉아 직접 협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에이전트들이 이 일을 대행한다.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은 “계약은 돈이 걸려 있는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이전에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전트 제도 도입 후 선수들과 구단들이 각자 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계약은 에이전트에게 맡겨두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트나 글러브 등 야구용품 후원을 따오는 것도 에이전트들의 일이다. 구단 전지훈련이 아닌 개별 해외 훈련 등의 장소 등도 섭외해 준다. 몇몇 에이전트는 선수들의 여행 스케줄을 짜주는 등 개인적인 편의를 봐주기도 한다.
○ 에이전트 세계도 빈익빈 부익부
많은 사람이 에이전트 하면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 나오는 슈퍼 에이전트를 떠올리지만 야구 에이전트의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시장이 그리 크지 않다. 100명이 넘는 에이전트 시험 통과자 가운데 고객인 선수를 데리고 있는 에이전트는 20명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야구 선수와의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으면 일을 맡기가 어려운 구조다. 현재 규정상 1명의 에이전트(법인 포함)가 보유할 수 있는 선수는 총 15명(구단당 최대 3명)으로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리코스포츠처럼 야구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는 박병호(넥센), 김현수(LG) 등 이른바 돈이 되는 선수를 여럿 데리고 있지만 대다수의 에이전트는 대형 계약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아무리 법률 지식이 있어도 고객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큰 장벽”이라고 말했다.
김선웅 총장은 “에이전트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상업용 광고를 따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야구 선수의 상업 광고 수요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최형우(KIA), 이대은(KT) 등을 고객으로 데리고 있는 스포츠인텔리전스의 김동욱 대표는 “아직까진 선수 계약 등으로 업무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제도가 정착될수록 선수들과 에이전트사 모두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