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이 목표라면 그에 상응하는 시간을 내게 줘야 한다. 월드컵 이후 결과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 나에 대한 평가 지점은 다음 월드컵이 돼야 한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49)이 올 8월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49)을 인터뷰할 때 벤투 감독이 한 말이다.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달라는 얘기였다.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2010∼2014년), 올림피아코스(그리스·2016∼2017년), 충칭 리판(중국·2018년)의 사령탑으로 있을 때의 경기 영상을 분석했던 김 위원장은 10여 명의 후보 중 벤투 감독을 최종 낙점했다.
2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강한 전방 압박으로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수비를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벤투 감독에게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시간을 주면서 계약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에 딱 맞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벤투 감독은 빠른 공수 전환과 강한 압박을 앞세워 경기 주도권을 쥐는 축구를 추구한다. 이는 협회가 원했던 감독 성향과도 일치했다. 김 위원장은 “사령탑 후보 선정에 앞서 ‘능동적 스타일로 경기를 지배한다’는 한국 축구의 방향성을 정립했다. 이후 후보들의 경기를 분석했고, 벤투 감독이 우리의 방향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 선임 발표 당시 일각에선 벤투 감독이 충칭에서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것을 두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경기 영상을 꼼꼼히 살펴본 김 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을 이끌 때보다 올림피아코스를 이끌 때 더 능동적인 경기를 했다. 중국에서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부임 초기 경기를 살펴보니 올림피아코스를 이끌 때보다 공격 전개와 수비 압박 등이 발전돼 있었다. 재기에 대한 의지가 있고 경기 내용적으로는 점차 발전하고 있는 사령탑이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대표팀 운영 과정을 적극적으로 살펴본다.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기간이 끝나면 벤투 감독으로부터 경기 준비 과정과 리뷰 등이 담긴 보고서를 받고 피드백을 한다. 지속적으로 성과를 평가하고, 대표팀 운영 과정을 점검하는 것이다.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성적이 부진하면 갈아 치우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다.
벤투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은 무패 행진(3승 3무)을 벌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루과이 등 강호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걱정도 많았다. 나도 같이 시험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좋은 출발을 해서 안심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성적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벤투 감독이 본격적으로 역량을 발휘해야 할 대회(내년 1월 6일 막이 오르는 아시안컵,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예선 등)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 김 위원장은 “모의고사는 끝났다. 이제 수능(아시안컵)이다. 대표팀은 균형이 잘 잡혀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내년 1월 6일 개막하는 2019 아시안컵에서 59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린다. 모처럼 후끈 달아오른 축구 열기와 팬들의 지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벤투 감독도 아시안컵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벤투 감독에게 우리 목표는 아시안컵 우승,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진출, 월드컵 본선 8강이라고 말했고, 벤투 감독도 (목표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토너먼트 돌입과 국제 대회에서 발생하는 변수 등을 벤투 감독이 어떻게 컨트롤해 나가는지를 지켜볼 예정이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