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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가난, 86세대 책임이다

Posted March. 30, 2019 08:24,   

Updated March. 30, 201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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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만 원 세대’라는 청년들의 자조를 들으면 저성장 시대를 만난 불운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청년 빈곤이 50대인 86세대 때문이라는 논문이 나왔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48)가 최근 ‘한국사회학’에 게재한 ‘세대, 계급, 위계: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이다. 이 교수는 각종 통계자료를 활용해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86세대가 권력과 부를 너무 많이, 오랫동안 쥐고 있는 바람에 젊은 세대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분석했다.

 86세대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후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새롭지 않다. 45세 미만 국회의원 비율은 6.33%로 150개국 가운데 143등이다(시민단체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 자료). 그래서 청년 공천 할당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86세대가 여느 세대보다 근속 연수가 길고, 소득 상승률이 높으며, 오랫동안 최고소득을 점유해 다른 세대와의 격차를 벌렸다는 분석에는 눈길이 간다. 86세대의 경쟁력은 조직력이다. 산업화 세대가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는 동안 86세대는 민주화란 목표 아래 학연 지연 혈연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뭉칠 줄 알았다.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는 수만 개의 시민단체를 만들어 연대했는데 86세대의 1인당 가입 조직 수는 0.451개로 50년대 세대(0.209개)와 70년대(0.331개), 80년대(0.185개)보다 훨씬 많다(대졸자, 2010년 기준).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다져온 조직력은 뜻밖에도 정치권력은 물론 밥그릇을 챙기는 데도 밑천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당시 30대였던 86세대는 살아남았다. 여기까진 운이다. 이후로는 특유의 전투력을 발휘해 노조 활동으로 정규직과 높은 임금상승률을 얻어냈다. 대가는 후배 세대가 치렀다. 기업들이 노동비용 상승에 생산시설 해외 이전, 비정규직 확대, 하청업체 단가 후려치기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100대 기업의 임원진 가운데 50대 비율은 대개 60% 선인데 2017년엔 70%가 넘었다. 이 교수는 “정치권력의 주류세력에 맞춰 기업도 줄을 대기 위해 비슷한 연배를 기용하기 때문”이라며 권력 불평등이 경제 불평등을 낳는다고 해석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평등 심화의 핵심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수정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86세대가 세대 간 경쟁의 승자라는 주장은 과장됐으며 부양 부담을 고려하면 86세대는 오히려 ‘낀 세대’”라고 했다. 부모 세대로부터 풍요로운 시장을 물려받고, 외환위기의 칼날을 피하고, 2000년대 닷컴 붐을 타는 등 운이 좋았을 뿐 세대 간 불평등을 의도한 게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86세대가 누리는 기회가 운 덕분이라면 불운한 세대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걸까. 요즘 청년들은 많이 배우고도 취업을 못 한다. 첫 직장을 갖는 데 실패하면 그 이후로는 더욱 험한 난관을 만나게 된다(상처효과·scarring effect). 혼인율과 출산율이 괜히 떨어지는 게 아니다.

 청년수당이라며 돈 몇 푼 쥐여주는 일회성 정책보다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공평하게 나눠 갖는 세대 간 연대가 필요하다. 산업화 세대를 대표하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황정민)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86세대는 “세대의 행운을 우리만 누린 게 미안하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교수 표현대로 “밥그릇 싸움 너무 잘해서 손주 못 보는 세대”로 전락할지 모른다. 



남시욱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