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은 평화를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함’이라고 정의한다. 그 평화를 사유의 핵심에 놓은 철학자가 묵자였다. 그는 비공(非攻)을 주장했다. 비공이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그것을 어떻게 관철시키느냐가 문제였다. 약자와 약소국의 편을 드는 것, 이것이 그가 제시한 해결책 중 하나였다.
그는 초(楚)나라가 송(宋)나라를 침략하려 한다는 소리를 듣고 밤낮으로 열흘을 달려 초나라로 갔다. 송나라는 크기가 초나라의 10분의 1이 안 되는 작은 나라였다. 경제력도, 군사력도 작고 약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약소국이라는 것이었다.
초나라는 자국에서 새로 발명한 무기인 운제(雲梯), 즉 구름에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를 이용하여 송나라의 성을 함락시킬 심산이었다. 묵자는 침략전쟁이 천륜에도, 인륜에도 어긋난다는 자신의 말에 초나라 왕이 설득당하지 않자 다른 카드를 꺼냈다. 사다리 무기를 무력화할 비책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300명의 제자들을 이미 송나라로 보내 대비하고 있으니 아무리 침략해도 소용없다고 단언했다. ‘저를 죽인다 해도 그들을 다 없앨 수는 없을 겁니다.’ 초나라 임금은 결국 묵자의 말에 송나라를 침략하지 않기로 했다. 묵자는 다른 경우에도 그런 식으로 전쟁을 막았다.
묵자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덕목 때문이었다. 하나는 나와 우리만이 아니라 타자까지 사랑하라는 겸애(兼愛) 사상이 그에게 부여한 도덕적 권위였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것을 실천하려 한 용기였다.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라.’ 공자도, 맹자도 펼치지 못한 절대적인 평화와 환대의 사상이었다. 2400여 년 전의 묵자는 바로 이것을 갖고 강대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사다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강한 무기를 가진 강대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묵자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을까.
신무경기자 y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