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인 홍콩이공대에 남은 수십 명의 강경파 시위대는 20일 경찰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학교 곳곳에 흩어져 숨어들면서 ‘장기 고립’에 대비하고 있다. 유명한 홍콩 재벌의 이름을 딴 리카이싱 건물과 학생회 사이 공간 바닥에는 구조를 요청하는 대형 ‘SOS’를 천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교정 곳곳은 폭발 흔적으로 전쟁 뒤 폐허와도 같았고 일부 건물 내부는 폭발로 스프링클러가 터져 전체가 물바다가 된 모습이었다. 19일 밤에는 부상자들을 치료해 온 자원 구급대원 20여 명마저 안전 등을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 홍콩 이공대 텅진광 총장은 20일 학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대가 모두 밖으로 나가기를 호소하면서 시위대가 이공대 등에서 탈취한 것으로 알려진 “위험한 화학물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시위대 고사 작전에 나선 경찰은 20일 “18일 밤 체포된 모든 시위대를 폭동 혐의로 기소해 석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수를 뒀다. 이날 홍콩 도심 곳곳에서 체포된 시위대는 200명. 단일 시위에 폭동 혐의를 가장 많이 적용한 기록을 남겼다. 강경파로 알려진 신임 크리스 탕 경무처장이 19일 부임하자마자 초강경 대응으로 나선 것이다. 시위대와 대치하는 최전선 경찰들에게 살상용 폭동진압 무기인 AR-15 반자동 소총과 경기관총을 지급하고 특수부대 소속 저격수도 배치해 유혈 사태 우려도 여전하다. 시위대는 이날도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방해 시위인 ‘여명운동’을 재개해 시민들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 실시 여부가 홍콩 사태의 분수령으로 떠오르고 있다.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예정대로 안전하고 질서 있는 선거를 치르기를 희망한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선거를 진행할지는 정부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라며 “선거를 막는 건 폭력으로 홍콩을 파괴하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시위가 계속되면 선거를 연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홍콩 정부는 24일 선거 당일에도 1시간 반 이상 선거 방해가 지속되면 즉시 선거를 연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위대는 야당에 다소 유리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번 선거를 연기하면 더 강력한 시위를 벌이겠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상원이 19일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홍콩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국무부는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미국이 홍콩에 제공해 온 경제·통상 분야의 특별한 지위를 유지할지 결정한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해 발효되면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馬朝旭) 부부장은 20일 윌리엄 클라인 주중 미국대사 대행을 초치해 “미국이 즉시 이 법안의 발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않으면 반드시 강력한 조치로 결연히 반격할 것”이라며 “모든 후과는 완전히 미국이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담화에서 “미국은 자신이 지른 불에 타 죽고 자업자득 하지 않으려면 벼랑 끝에서 말을 돌리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외교를 포함해 전국인민대표대회(한국의 국회 격), 전국정치협상회의(국가 자문기구) 등 7개 중국 기관이 보복 경고에 나서 중국이 이 문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응하는지 보여줬다.
윤완준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