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가(49·사진)는 지난해 공식 석상에서 자주 마감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소년이 온다’, ‘흰’에 이은 ‘눈 3부작 연작 소설’을 완결하는 작품의 집필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작가를 오래 힘들게 한 소설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첫 회분을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다.
주인공은 작가의 페르소나로 읽히는 소설가 k. 2014년 학살을 다룬 작품을 발표한 이후 k는 악몽에 시달린다. 무덤 같은 수천 개의 통나무 위로 시퍼런 파도가 덮치고, k는 무덤을 구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몸부림치며 그곳을 빠져나온다.
4년이 지나 k는 친구 인선을 통해 제주4·3사건을 접하면서 오랜 악몽이 현실의 예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손가락을 다친 인선 대신 인선이 키우는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가는 길. k는 언젠가 인선이 들려준 인선 어머니의 일화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어린 자매가 마침내 가족들의 시신을 찾아내 장사를 치른 과정에 대해서도, 그 후 어떤 끈기와 행운으로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오직 그 눈(雪)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이야.”
소설에는 과거 k가 작품을 쓰면서 겪은 심적 고통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가족에게 어두운 영향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거나 위경련, 편두통을 겪는 모습이 한강 소설가가 ‘소년이…’를 집필하던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k처럼 한강 소설가도 샘터 잡지 기자 출신이다. ‘소년이…’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다.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무덤이 나오는 악몽을 꾸던 k는 인선의 부탁으로 작고 여린 새를 돌보러 제주도로 가는데, 이는 집단적 죽음으로부터 개별적인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무덤, 나무토막, 눈이 빚은 정갈한 이미지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3년 만에 발표한 이번 작품은 2회분으로 나눠 소개할 예정이다. 이상술 문학동네 문학1팀장은 “처음에 중편으로 예상했지만 분량이 길어져 장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년 상반기에 눈 3부작 연작 소설집을 출간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설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