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세계인 대다수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와 공포에 빠졌다. 1월 23일 중국이 우한을 봉쇄한 뒤 현재까지 중국의 코로나19 확진 환자와 사망자는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7주 동안 중국 사회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국가, 정부, 생명, 개인 행위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과 관념, 감정이 7주간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이는 드문 일이다.
1990년대 초 이래 나는 중국 시민들의 감정이 이렇게 격렬하게 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국가, 사회, 개인의 운명 이 세 부분에 대한 중국인의 사고가 솔직하게 바뀌었다. 코로나19가 덮치면서 중국인의 시민의식,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감정이 분출됐다. 코로나가 덮친 중국은 최근 중앙집권 통제가 강화됐지만 용솟음치는 민의에 직면해 통제에 신중해졌다. 어쩌면 미래 사람들은 중국의 2020년을 코로나19로 3000명 이상 사망한 사실뿐 아니라 자유와 국가 민주화를 향한 중국인의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른 해로 기억할 것이다.
중국 민중은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지난해 11월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한참 지난 올해 1월 23일에야 우한을 봉쇄하고 전면 대응했는가? 진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가 늦장 대응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우한이 봉쇄되고 후베이(湖北)성 대다수 도시에 대한 이동 제한 조치를 실시한 뒤 환자 치료가 어떻게 진행됐는가? 코로나19와 관련한 진실은 무엇인가? 우한과 후베이성 정부 관료들이 관료주의 폐단을 드러냈다면, 베이징의 질병예방통제센터와 중국 중앙정부는 코로나 대응 초기의 실수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중국 관영 매체들은 긍정적인 목소리 일변도다. 하지만 매체 차이신(財新)과 많은 중국의 민간 인사들은 정부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동원한 선전 운동과 거리를 둬왔다. 계속해서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진실한 소식을 전해 왔다. 우한의 여류 작가 팡팡(方方)은 일기 형식으로 우한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 중국의 집권주의 체제가 가져온 ‘양면성’(통제와 동원 능력이 강하고 정보를 크게 통제하는)에 대해 솔직하게 비판하고 지적했다.
지난달 7일 ‘휘슬블로어’ 의사 리원량이 세상을 떠나고 한 달이 지난 이달 7일 다시 중국의 민의가 격분했다. 왕중린(王忠林) 우한시 서기는 여전히 상황이 심각한 우한 시민들에게 “공산당의 은혜에 감사하고 (시진핑) 총서기의 은혜에 감사하라”고 요구해 원성을 샀다.
중국의 헌법과 중국 공산당 당장(黨章)은 정부가 인민을 위해 복무할 것을 강조한다. 관료는 인민의 공복이다. 하지만 우한의 최고 관료는 우한 시민에게 “은혜에 감사할 것”을 요구했다. 1912년 전 군주제 시대의 중국과 다를 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
군주제 시대의 중국에서는 평민인 민중들이 무릎을 꿇어 황제의 ‘망극한 성은’에 감사했다. 다행히 중국은 우한 서기 방식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신속하게 인터넷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코로나19 속 중국의 민중은 인간성과 자유의 가치를 따르는 민의를 표출해 승리를 거뒀다.
최근 수년간 중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한 반면 중국 국내 정치의 ‘신(新)권위주의’는 뒷걸음질쳐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이는 중국 정치 엘리트들의 중국 통치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복잡한 문제가 산적해 민의와 사회 주장들을 정치 엘리트주의의 궤도에서 통일시켜야 계속된 ‘중국 굴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바로 세계화와 국제화의 이중 충격에 노출된 중국에서 자유와 진실 등을 갈망하는 민중의 요구를 등한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민의와 정부의 대결은, 중국이 정치 개혁을 꾀하고 자유, 법치, 공정한 정치 제도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농담이 유행하고 있다. 왜 중국 정부가 외출 때마다 모두 마스크를 쓰도록 요구하느냐? 답은 모든 중국인이 ‘허풍을 적게 떨고 반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