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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속 콩알만한 그림 음반 표지 디자인을 바꾼다

스마트폰 속 콩알만한 그림 음반 표지 디자인을 바꾼다

Posted March. 12, 2020 08:23,   

Updated March. 12, 202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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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네일 작업 의뢰드립니다. 일러스트레이션 느낌이 나고 가수나 앨범명은 안 들어갔으면 합니다.”

 요즘 음반 표지 디자인 과정에서 흔히 듣는 의뢰의 말이다. 표지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서두의 ‘섬네일’이 대신한다. CD 대신 휴대전화 속 디지털 음원 서비스상의 콩알만 한 그림으로 표지가 소비되다 보니, 웹상의 작은 대표 이미지를 통칭하던 섬네일이란 말이 ‘커버’ ‘재킷’ ‘표지’란 말을 대체해버린 형국이다. 종종 기술은 예술을, 형식은 내용을 바꾼다. 지름 30cm의 레코드, 12cm의 CD보다 훨씬 작은, 모바일의 마이크로 시각 환경으로 전장이 옮겨가면서 음반 표지 디자인 경향도 달라지고 있다.

○ 작은 화면, 강렬한 색감… 한눈에 사로잡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한 커다란 눈망울의 인물, 지극히 단순화된 이미지…. 섬네일로 압축된 음반 표지 디자인에서 요즘 각광받는 형태다. ‘조용필’ ‘제10집’ 같은 식의 ‘깨알 정보’도 화면 밖으로 밀려나버린다. 음원·음반 유통사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는 “예전엔 가수 인물 사진이 많았다면 요즘은 잘 만든 만화 캐릭터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추세”라고 했다.

 최근 국악 퓨전 밴드 ‘이날치’의 싱글 연작 표지는 단순함과 강렬함을 다 잡은 예다. 앨범 제목의 어류, 토끼, 호랑이가 기이한 캐릭터로 화면을 메운다. 작업을 맡은 그래픽 디자인 그룹 ‘오래오 스튜디오’의 강민경 작가는 “음반 표지는 보통 사용자에게 처음 인지되면 디테일보다 색감으로 많이 기억된다. 따라서 작게 보이는 환경에서도 (이번 작품도) 이날치의 것이라고 예감할 수 있게 색감 설정과 색상 분포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했다. 또 “청중이 판소리라는 전통 국악에 대한 부담을 덜고 호기심을 갖도록 낯선 그래픽 아트워크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세부 표현이 덜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한 디자이너는 “예전 음반 재킷은 좋은 조명을 갖추고 전문 스튜디오에서 상황을 설정해 찍었다면, 요즘은 휴대전화로 슥 찍어 관련 앱(애플리케이션)으로 보정하는 DIY(손수 제작) 방식을 쓰는 경우도 많아 전문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도 주는 추세”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CD와 LP, 디지털 음원의 디자인 주체가 각각 분화하는 양상도 보인다. 스위트피, 우효, 박기영의 앨범 디자인을 맡은 ‘파이널닷’의 안승준 대표는 “고품질 인쇄 디자인의 노하우와 경험이 있어서 근래엔 LP 커버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 “관념적·실험적 디자인 촉매 되기도”

 크기의 붕괴가 늘 예술성을 제물로 삼는 것은 아니다. 독특한 표지 제작으로 유명한 김기조 디자이너는 “한편으론 표지에서 가수나 앨범 이름 같은 기본 정보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덜어져서 되레 예전보다 더 실험적이고 관념적인 디자인이 등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밴드 ‘혁오’는 신작 ‘사랑으로’의 표지에 독일 유명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의 관념적 식물사진을 실었다. 디지털용 섬네일은 정사각형으로 잘라 썼지만, CD는 원래 작품의 비율을 그대로 살려 특수제작했다.

 강렬하고 단순한 섬네일은 기획 단계부터 연계 디자인 제품으로 소비자를 빨아들이는 티저 역할도 한다. 백현진, 불고기디스코, 향니 등의 디자인 제품을 기획한 ‘패쓰바이’의 김철희 대표는 “섬네일은 음악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중심 이미지다. 핑크플로이드의 앨범, 롤링스톤스의 로고가 가진 세월을 초월한 힘을 요즘 음악가들에게 적용하려 노력 중”이라고 했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