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는 동력을 사용한 최초의 비행에 성공했다. 비행시간은 겨우 12초였다. 1908년 항공기는 1시간 이상 창공에 체류하며, 20∼30km를 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경쟁이 벌어지는데, 새로운 비행이 시도될 때마다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서 눈을 번쩍거리고 있었다.
항공전에 대한 영감은 항공기는커녕 비행선이 발명되기도 전, 기구가 하늘로 떠오를 때부터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 항공전에 대한 논문이 등장했다. 비행선이 발명되자 제일 먼저 군대가 구입했고 정찰과 공격(폭격)을 연구했다. 하늘에서의 공격은, 아직 제대로 된 항공기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실감하기조차 힘든 것이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미래 전쟁에 대한 굉장한 공포감과 영감을 얻었던 모양이다. 놀랍게도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폭격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이 논의됐고, 향후 5년간 도시나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이 약속은 쓸모가 없었다. 당시에는 원하는 목표까지 가서 충분한 폭탄을 투하할 만한 기구나 비행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5년이란 시한은 꽤 의미심장한데, 항공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하늘의 무기가 설득력 있는 형태를 갖추자, 아니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자 국제법은 항공기를 무기로 인정하게 됐고, 주요국 작전사령부에서는 항공 공격을 전략적으로 검토했다.
인간은 때로는 영악하고, 때로는 아둔할 정도로 변화에 둔감하다. 전쟁사에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은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군이 항공전에 관해서는 희한하게 앞서 나갔다. 하늘에서 무방비 상태의 지상 목표에 공격을 퍼붓는다는 상상이 주는 희열이 강력했던 것 같다. 무방비 상태의 적, 얼마나 황홀한 생각인가. 그 덕분에 공군이 창설되고 항공산업이 등장했지만, 막상 항공전이 벌어지자 전쟁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의 적, 그렇게 황홀한 전쟁은 없다.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