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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두시간 설득… ‘미디어 왕국’이 시작됐다

잡스 두시간 설득… ‘미디어 왕국’이 시작됐다

Posted May. 09, 2020 08:58,   

Updated May. 09, 202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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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최고경영자(CEO), 시가 총액 300조 원 기업을 이끌던 로버트 아이거의 첫 저서라면 첫 장부터 디즈니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늘어놓을 법도 한데 그는 다소 의외의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재임 시절 최악의 사고, 이 책을 통틀어 그가 가장 힘들고 약해 보이는 순간이다.

 2016년 중국 ‘상하이 디즈니랜드’ 개장을 앞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지구 반대편 미국 올랜도 디즈니리조트에서 악어가 두 살배기를 물고 사라지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상하이에서 개장식을 준비하던 아이거는 아이 부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회사의 과실을 CEO가 직접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소송이 시작되면 불리해질 수도 있지만 그 순간 그에게 그런 원칙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 부모에게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거듭 말한 그는 전화를 끊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 엉엉 울어버린다.

 회고록이라기보다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디즈니의 전성기를 이끈 수장의 리더십, 고비마다 좋은 선택을 내린 경영인의 전략서적에 가깝다. 바탕에는 진정성과 존중, 정직함이라는 행복한 회사의 비결로는 뻔해 보이지만, 회사의 명운을 좌우하는 선택의 순간에는 누구나 회피하고픈 아이거만의 원칙이 깔려 있다. ABC방송국 말단 보조로 시작해 디즈니에 인수당한 ABC 출신으로 인수한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그가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터득한 수모와 보람에서 나온 원칙이다.

 디즈니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자 변곡점은 디즈니의 픽사 인수다. 픽사의 리더 스티브 잡스와 벌인 협상은 그의 원칙이 가장 두드러진 장면이기도 하다. 길이 7m가 넘는 화이트보드에 두 시간 동안 인수합병의 단점만 써내려가는 잡스를 끝내 설득해 낸 것은 다른 기업에 회사가 넘어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고 픽사의 독특한 문화와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그의 약속이었다. 이어 숨 가쁘게 펼쳐지는 마블과 루커스필름 그리고 21세기폭스 인수, 트위터 인수 포기, 디즈니플러스 론칭에 얽힌 뒷이야기들을 통해 ‘대담함’과 ‘올바름’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를 그가 어떻게 끊임없이 견주며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는지 들려준다.

 책의 전반은 ABC방송국의 스포츠와 뉴스를 이끈 룬 얼리지, 디즈니의 또 다른 전성기와 몰락을 이끈 CEO 마이클 아이스너 등 그가 경험한 상사들의 장단점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흡수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가 2005년 디즈니 CEO로 취임해 침몰 중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구원하고 올드 미디어의 쇠락 속에서 디즈니플러스라는 미래를 대비하며, 글로벌 시장 전략을 정비하는 과정이 전개되는 후반부는 경영학 교과서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와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진 마블의 아이크 펄머터, 루커스필름의 조지 루커스와의 인수 과정 막전막후도 흥미진진하게 몰입할 수 있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