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영상메시지에서 “한반도는 아직 남북 의지로만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남북이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분명 있다”며 “북한도 대화의 창을 닫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무력도발 경고를 하는 등 긴장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내놓은 첫 대북 메시지였다.
문 대통령은 앞서 어제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더는 여건이 좋아지기만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며 북한을 향해 ‘한반도 주인론’을 강조하며 독자적 남북협력을 위한 대화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남과 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가 됐다”며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맡겠다고도 했다. 북한의 도발 압박에 대한 대응방향을 ‘북한 달래기’로 굳힌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북한이 협박 수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이에 비례해 정부와 여당의 대북 구애 행보도 적극적이 되어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어제 4·27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촉구는 물론이고 미국을 향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조속히 재개되도록 대북제재 예외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북핵 개발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한국이 대북 제재 해제에 힘을 싣는 것은 한미 공조와 국제사회의 결속력을 약화시켜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 대통령은 어제 “전단 살포 등 적대행위 중단 합의는 누구나 준수해야 하는 합의”라며 정부의 대북전단 단속 방침에 확실한 힘을 실어줬다. 북한 지도부가 최근 대남 위협의 강도를 높여온 것은 비단 대북전단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들을 외면하는 미국을 향한 벼랑끝 전술이며 남측의 태도나 반응은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하고 움직이는 양상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싫어하는 것만 피하면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에 사로잡혀 실기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20년 전 6·15공동선언을 비롯해 재작년 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남북 합의들이 만들어졌지만 위협과 도발을 일삼는 북한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북한 달래기만으로는 위기를 잠시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제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