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양치기의 기도

Posted July. 22, 2020 08:20,   

Updated July. 22, 2020 08:20

日本語

 형식에 치우치거나 타성에 젖어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것을 놓칠 때가 있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 점을 파고든다.

 어느 날 모세는 양치기가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느님,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을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신발을 수선해 드리고 머리를 빗겨 드리고 싶습니다. 옷을 빨아 드리고 이를 잡아 드리고 싶습니다. 주무실 시간이 되면 우유를 가져다 드리고 당신의 작은 손과 발에 입맞춤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모세는 그 기도를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었다. 감히 신한테 신발과 우유 얘기를 하고 이를 잡아주고 어쩌고 하다니, 불경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기도를 중단시켰다. 그러면서 무식한 소리 그만하고 품격 있는 말을 사용하라고 심하게 나무랐다. 양치기는 잔뜩 주눅이 들어 옷을 쥐어뜯고 한숨을 쉬며 사막으로 달려갔다.

 모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신이 그를 꾸짖는 게 아닌가. “너는 예언자로서 사람들을 나와 결합시키려고 온 거냐, 갈라놓으려고 온 거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어찌 혼내고 모욕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경배의 방식은 좋거나 나쁘지도, 서열이 매겨지는 것도 아니라는 거였다. 기도하는 데 옳고 그름이 어디 있느냐는 거였다. 신성모독처럼 들리는 것이 때로는 가장 진실한 기도일 수 있다는 거였다.

 모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막에 있는 양치기를 찾아가 사과했다. 그리고 양치기에게 이제부터는 마음이 가는 대로 기도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치기는 이미 그것을 깨달은 후였다. 그가 보여준 단순함과 신을 향한 불타는 마음이 사실은 기도의 본질이었다. 모세는 그것을 잊고 양치기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루미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본과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의식이나 말보다는 간절한 마음, 타는 목마름이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우화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것이 어찌 종교만의 일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