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클래식 음악은 유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음악은 매주, 매일 인기곡 차트가 바뀌는데 클래식은 인기 있는 곡만 늘 인기 있다고 말이죠.
그 생각이 늘 맞는 것은 아닙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오늘날 전 세계 클래식 차트 1위를 휩쓸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대중이 거의 모르는 작품이었죠. 1955년 이탈리아의 실내악단 ‘이 무지치’가 음반을 내놓고 세계 곳곳에서 연주하면서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도 자주 연주되지 않다가 인기곡으로 떠오른 작품입니다. 1908년 세상에 나왔고, 연주하는 데 대략 1시간이 걸리는 곡이죠.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보다 길지는 않지만, 초연 후 ‘지루하다’ ‘형식이 느슨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문제는 라흐마니노프의 신경이 너무 섬세했다는 것입니다. 스물네 살 때 교향곡 1번을 썼지만 악평을 받자 신경쇠약에 걸려 한참을 고생할 정도로 이른바 ‘유리 멘털’이었죠. 결국 교향곡 2번도 그가 포기했습니다. ‘지휘자가 자기 마음대로 줄여서 연주해도 좋다’고 선언했죠. 그 뒤에도 이 곡을 연주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가끔 아무렇게나 생략된 형태로 공연되거나 음반이 나오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외면받던 이 곡의 재발견에 공헌한 사람이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입니다. 그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있던 1971년 이 악단을 이끌고 소련과 아시아 순회연주에 나섰습니다.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도쿄 오사카 나고야를 거쳐 서울 홍콩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동아일보 주최로 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을 협연했습니다.
이때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된 곡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었습니다. 물론 마음에 든 곡이니까 선택했겠지만 프레빈은 이 순회연주에서 이 곡을 계속 지휘하면서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진정으로 이 곡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년 뒤인 1973년에는 프레빈이 같은 런던 심포니와 이 곡을 음반으로 발매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뒤 여러 지휘자가 이 곡의 음반을 내놓았고, 줄여서 연주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이 곡을 편집 없이 음반으로 내놓은 것은 프레빈보다 5년 앞서 폴 클레츠키라는 지휘자가 첫 번째였지만 이 곡의 인기에 불을 붙인 것은 프레빈의 음반이었습니다.
1976년에는 인기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클리블랜드 음악원을 나온 에릭 카먼이라는 가수가 이 곡의 느린 3악장 메인 선율을 편곡해 팝송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으로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카먼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도 ‘All By Myself’라는 노래로 각색해 더 큰 인기를 끌었죠.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도 삽입된 노래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으로 돌아가면, 이 곡은 어딘가 가을 분위기가 충만합니다. 초가을, 우리나라의 9월 햇살 같다고 할까요. 이병욱이 지휘하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이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8월 6일 이 곡을 연주합니다. 미국의 20세기 작곡가 새뮤얼 바버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협연하고, 영화 ‘플래툰’ 삽입곡으로 유명한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도 연주합니다.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