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는 자신의 감정에 음을 실었지만, 쇼팽은 음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었다.” ―앙드레 지드 ‘쇼팽 노트’ 중
처음에는 그저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볼수록 의미가 새롭다. 음악세계에서 완벽한 대척점이었던 두 사람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앙드레 지드니까 가능했던 촌철살인이다.
음악사에서 바그너만큼 문제아로 꼽히는 인물은 없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은 그를 숭배하거나 혐오한다. 오만과 독설, 사치벽, 편견과 증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도덕 불감증까지. 그야말로 파락호가 따로 없다. 그래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그에 비해 쇼팽은 지질해 보이는 남자다. 놀라운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소심해서 대규모 청중 앞에서는 연주조차 못 했고, 아무리 화가 나도 욕은커녕 큰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겨울마다 걸린 감기 치레는 중병처럼 심하게 앓았고, 자기가 쓴 곡조차 원하는 만큼 세게 칠 힘이 없었다. 작곡도 대규모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피아노곡에만 집중했고 그나마 대부분 소품이다.
그러나 피아노 소품들만으로 쇼팽은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다. 강렬한 소리는 감정을 고양시키는 데 적격이지만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다. 선동과 조작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이 많으니 말이다. 화려하고 큰 소리가 강력해 보이지만 정작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것은 조용하고 섬세한 소리이다.
작은 소리가 큰 소리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비단 음악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속삭임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잠자는 아이의 쌔근대는 소리가 주는 평안함은 또 어떤가. 크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은 것이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