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戰時’에 불요불급•인기성 지출 더 늘린 역대 최대 적자 예산안

　정부가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서 555조8000억원 규모의 2021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는 슈퍼팽창예산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작년 예산보다 8,5% 더 증가한 것이다. 내년 예상 총수입은 거의 그대로여서 총수입과 총지출 증가율의 차이는 -8.2%포인트로 벌어진다. 이같은 격차를 메우기 위해 역대 최대인 89조7000억원의 적자 국채 발행 계획이 짜여져 있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과감한 팽창예산을 편성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무너진 상황에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통한 경기회복과 실업자·영세자영업자를 포함한 취약계층 구제를 위한 지출은 정부 재정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전시(戰時)상황’에 따라 예정에 없던 지출이 대폭 늘어나면 그걸 감안해 불요불급한 항목은 줄이는게 상식인데 정부 예산안은 오히려 정반대로 갔다는 점이다. 당장 급하지 않은 항목은 줄이고 고용 유지 및 창출, 내수 경기 활성화, 취약계층 보호 등에 초점을 맞춰 집중 지원이 이뤄져야하는데 정작 예산증가의 상당부분은 경제난 대처와 무관한 인기얻기식 신규 사업들이다.

　예컨데 전면적 고교 무상교육을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실시하고, 장병 사기진작을 위한 이발비 지원·봉급인상 등 미뤄도 되는 사안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이번 정부 임기 내에 17만4000명 더 늘리겠다는 공무원 증원방침에 따라 내년에도 3만 명 가량 늘리는 예산도 편성됐는데, 지금 나랏돈을 이런 데 사용할 만큼 한가한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위기를 맞아 재정의 역할 확대가 중요하다해도 날로 늘어나는 나라 빚 역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정부까지만 해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오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는 무너진 지 오래다. 올해 본예산과 3차례 추경을 통해 벌써 43.5%에 달했다. 이번 예산 편성안으로 볼 때 내년에는 46,7%로 올라가고 2024년이면 유럽 주요국들 수준인 58.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라 경제의 안정적 운영과 대외신용도의 버팀목인 재정건전성이 이처럼 급속도로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올해와 내년 나라 살림만큼은 정부 스스로 일컫듯이 ‘경제전시상황’에 맞게 운영돼야한다. 보편적 복지에 할당됐던 항목, 경제 살리기와 무관한 지출 등은 유지 혹은 축소해 이를 코로나 위기에 걸맞은 항목으로 돌리는 과감한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정부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임시국회에서 보여준 독주하는 여당, 무력한 야당 이 아니라 예산 심사과정에서만큼은 위기의식을 갖고 민생과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김광현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