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 수뇌부 회의 참석자 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최고 지휘관들이 줄줄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백악관에 이어 펜타곤까지 코로나19에 뚫리면서 미국의 국가안보 컨트롤타워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마크 밀리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최고위 인사들이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2일 오전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던 해안경비대 찰스 레이 부사령관이 5일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같은 회의실에 있었던 다른 참석자들도 모두 자가 격리 대상이 된 것. ‘탱크’라고 불리는 펜타곤의 비공개 회의실에서 열린 당시 회의에는 밀리 합참의장 외에 존 하이튼 합참차장, 제임스 매콘빌 육군참모총장, 마이클 길데이 해군참모총장, 찰스 브라운 공군참모총장 및 주요 사령부 사령관들이 대거 참석했다. 동석한 실무진까지 합치면 최소 14명이 자가 격리 대상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출장 중이었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데이비드 버거 해병대사령관 등 군 수뇌부 가운데 두 명만 이날 회의에 빠졌다.
펜타곤 내부는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국내외 현역 미군과 국방부 직원은 4만7000명까지 늘어났지만 그동안 군 수뇌부 인사들의 확진 판정 및 자가 격리는 없었다. 백악관 당국자들은 외교안보 분야의 우려를 의식해 지난주 국방부 인사들에게 고위 군 인사들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말라고 했으나 펜타곤 측이 수긍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당장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전후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미의 대응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러시아 등도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존 브레넌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NPR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적대세력 중에 누구라도 현재의 산만한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중국이 홍콩이나 남중국해에서 무슨 일을 벌일 수 있고, 러시아가 벨라루스나 다른 나라에서 뭔가를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너선 호프먼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밀리 합참의장은 이날 오전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며 “국방부의 경보 단계나 우리 무장병력의 준비태세 및 역량에는 변화가 없으며 미군은 국가 안보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군내 자가 격리자 중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해안경비대 제이나 매캐런 소령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현역 군인 등 백악관 직원 2명도 이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 특히 매캐런은 백악관 군사실(WHMO) 소속으로 핵무기 코드가 포함된 핵가방(nuclear football)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핵가방은 유사시 대통령이 핵공격을 승인할 때 사용하는 암호가 들어있는 검은색 가방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대통령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니는 군사안보 핵심 장치인데 이런 핵심장치 운용 인력도 코로나 피해를 본 것이다.
백악관에서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밀러 보좌관은 반(反)이민 정책 등을 설계한 매파 핵심 참모다.
이로써 이달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캠프 및 의회 고위인사 중 확진자는 14명으로 늘어났다. 이미 백악관에선 호프 힉스 고문, 케일리 매커내니 대변인, 니콜라스 루나 보좌관 등이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전략을 총지휘해온 빌 스테피언 선거대책본부장,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도 감염돼 대선 운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