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17, 18일 부산 중구 중앙동에서는 평소와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됐다. 6·25전쟁 때 이산가족의 상봉 장소였던 ‘40계단’을 중심으로 골목길이 뻗은 이곳은 과거엔 피란민의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고, 지금은 소규모 점포들로 채워진 일상의 공간이다.
이 길들 사이로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와 비엔날레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과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미술계 인사들이 오가며 마주치고 인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요 비엔날레들이 코로나19로 연기된 가운데 지난달 개막한 2020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를 관람하는 발길이 이어진 것이다.
이 풍경은 전시 감독인 야코브 파브리시우스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지난해 공모를 통해 감독으로 선정된 직후 그는 부산의 ‘도시 공간’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파브리시우스는 부산에 머물며 도보로 전시 공간을 물색했다. 그러다 중앙동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영도까지의 풍경과 역사성에 매료돼 이곳을 외부 전시 공간으로 선정했다. 그 결과 관객이 예술 작품은 물론 부산의 깊숙한 풍경을 마주하게 됐다. 미술계 인사는 “보통 외지인이 부산 여행을 오면 개발된 곳만 가게 되는데, 획일적 공간보다 부산의 지역색이 드러나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열 장의 이야기…’는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과 중앙동의 7개 소규모 공간, 영도 항구 옆 창고에서 열리고 있다. 문학가 11명이 부산에 머물며 쓴 글을 토대로 30여 개국의 시각 예술가 70여 명이 작품을 출품했다.
현대미술관 입구에는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언급상을 받았던 요스 더 그라위터르 & 하랄트 티스의 ‘몬도 카네’가 설치됐다. 입구를 가로막은 철창살을 지나면 이탈리아 작가 모니카 본비치니의 나무집 ‘벽이 계속 움직이면서’가 보인다. 가로 세로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은 노원희의 회화 작품 ‘창’으로, 나무 집 속 사진은 스탠 더글러스의 사진 작품과 연결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서용선의 ‘체포된 남자’까지, 시각적 효과를 세심하게 고려한 큐레이팅이 돋보인다.
미술계 인사들은 ‘랜선 큐레이팅’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삼았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개막해 많은 기대를 했고, 같은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고가 됐다”며 “최근 운송료가 비싸졌음에도 온라인을 통한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신작 조각과 회화를 실물로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11월 8일까지. 4000∼1만2000원. 051-503-6111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