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굴된 유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둑돌입니다. 고분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추정되는데, 바둑이 신라 때도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7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심현철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경북 경주시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발굴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 무덤에서는 금동관, 금드리개 같은 장신구, 돌절구·공이, 운모 등과 함께 바둑돌이 함께 발굴됐다.
44호분의 주인공은 키가 150cm 전후인 신라 최상위 계층 여성으로 추정된다. 금·은·유리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단 가슴걸이는 천마총 같은 최상의 계층의 무덤에서만 확인되는 디자인이다. 또 금동관, 귀걸이, 팔찌 등 장신구가 작아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무덤 주인공의 발치에서 나온 바둑돌 200여 점이다. 지름 1∼2cm, 두께 0.5cm 내외의 작은 돌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모두 신라에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많아 중국에서 사신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통일신라시대 효성왕도 왕위에 오르기 전 친한 사람과 바둑을 뒀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그간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 천마총, 금관총 등 최상위 계층 남성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됐다. 역사 기록에 남성만 바둑을 뒀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그간의 발굴 결과와 통념상 바둑은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런데 이번 발굴로 신라 여성도 바둑을 뒀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됐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를 겹쳐 만든 장식품도 수십 점 발견됐다. 녹색과 금색 빛이 나는 비단벌레의 날개 2개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가장자리를 금동판으로 고정했다. 비단벌레는 삼국시대 동아시아에 광범위하게 서식했으나 지금 한반도에서는 멸종위기생물이다. 이 장식품은 마구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4호분의 발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부장궤에 겹겹이 쌓여 있는 유물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와 축조 과정을 복원해 그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