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
테슬라의 전기차 세단 ‘모델3’(사진)가 화재 등으로 전력이 끊기면 뒷좌석에서는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수 없도록 설계됐다는 게 팩트냐는 질문에 돌아온 테슬라의 공식 답변이었다. ‘내부 전력이 끊기면 기계적으로 문을 여는 장치는 앞문에만 있다’라고 적힌 사용자 안내서를 믿을 수 없어 테슬라코리아 측에 수차례 전화를 한 끝에 들은 한마디였다.
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1억 원이 넘는 테슬라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X’가 화재 사고 뒤 외부에서 문을 열 수 없었던 점에 대해 물었을 때도 테슬라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차량 제조사가 원인 조사도 안 끝난 사고에 대해 답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탑승자 구조 과정에서 소방당국이 발견한 문제에 대해서도 테슬라는 책임 있는 답변을 피했다.
먼 미래로만 보였던 전기차를 상용차로 만들어내 ‘혁신기업’으로 각광받는 테슬라다. 기자도 올해 테슬라 시승차량을 타 보면서 ‘기존의 완성차 업체들이 배울 게 많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문제에 대처하는 테슬라의 태도는 혁신기업도, 일류기업도 아니었다.
자동차는 사람을 태우고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는 점 때문에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고객은 기업을 믿고 큰 비용을 들여 제품을 구매한다. 위기 시 탑승자가 대처하기 힘들게 돼 있다는 점도 기가 막히고 무대응도 이해하기 어렵다.
보도를 접한 국내 모델3 고객들은 온라인 카페에서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유사시에 뒷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거나 “뒷좌석에는 애들이 타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어떤 고객은 “유리를 깰 망치를 뒷좌석에 상비해야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모델3의 뒷좌석 문제’는 이미 미국에서 2018년부터 불거져 나왔다. 한 해외 유튜버는 지난해 모델3 뒷좌석에 스스로 ‘비상 탈출고리’를 만드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뒷문 내장재를 완전히 뜯어내 문을 열 수 있는 철제 케이블을 찾아낸 뒤 드릴로 내장재 일부에 구멍을 내 고리를 연결하는 식이다. 이 유튜버는 이 동영상에 ‘내가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I Can Save Your Life)’는 제목을 붙였다.
이렇게 이미 문제가 제기되고 ‘해법’까지 나온 상황을 테슬라는 몰랐던 걸까. 불안한 모델3 고객은 카센터에서 뒷문에 구멍을 내고라도 탈출고리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모델3는 올 들어 11월까지 한국에서 1만 대가 넘게 팔렸다. 모델S, 모델X 판매까지 감안하면 테슬라의 국내 매출은 6700억 원이 훌쩍 넘는다. 테슬라가 소비자 안전 문제에 책임 있는 답변과 대책을 서둘러 내놔야 하는 이유다.
김도형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