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책 한 권 분량에 가까운 180쪽이 지나서야 음악 세상에 당당히 나갈 준비가 된 열여덟 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게 방대한 책이지만 대(大)바흐의 전모를 속속들이 전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저자는 영국의 유명 지휘자이자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관현악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의 설립자. 이 책에선 바흐의 성악곡이 지닌 의미와 매력을 소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칸타타(독창곡과 낭송풍 독창, 합창 등으로 이루어진 여러 악장의 성악곡)들과 수난곡(복음서의 내용을 토대로 예수의 수난을 묘사하는 음악) 두 곡, 그리고 B단조 미사곡이다. 요한수난곡과 마태수난곡을 다룬 두 장만 따로 뽑아내도 한 권의 상세한 학술서가 될 정도다.
저자는 특히 바흐의 칸타타 안에 작곡가 자신의 연주 흔적이 엮여 있으며, 이 곡들은 교회력(曆)은 물론 농사력과 시사문제까지 다룬다고 설명한다. “이 흔적들은 자연의 순환과 계절에 순응하고, 천사들 사이에서 보낼 내세를 고대하며 들떠 있는 누군가의 음색이다. 이 책의 부제(원어 부제: Music in the castle of heaven·천국 성채의 음악)가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다.”
바흐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기존의 책들 이상 풍성한 내용이 들어있다. 저자의 눈에 비친 바흐는 신실한 루터파 신교도였지만 ‘까칠한’ 인간이었다. 교회의 부당한 지시에 대놓고 대들었다. 당찮은 지시를 내리는 성직자들에게는 음악 속에 같은 단어를 지겹게 나열하거나, 악기들이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게 하는 등 비밀 메시지를 숨겨 보복했다. 그의 반항적 기질은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시도들을 도입하게 만들었다.
합창과 독창이 어울린 그의 성악곡이 교회용 음악뿐은 아니었다.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포도주보다 달콤하다’며 커피의 매력을 찬미한 그의 ‘커피 칸타타’는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당시 커피하우스에서 열리던 음악회는 18세기 후반에 등장하는 공공 연주회의 전신이었다. 바흐는 시의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음악감독으로 지위를 다지려 했다. 커피하우스와 교회는 이를 실현할 양대 기관이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