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설은 현대판 ‘미녀와 야수’입니다. 이 동화 속 주인공인 ‘벨’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나요?”
지난 한 해 뜨거운 화제작이자 문제작이었던 영화 ‘365일’의 폴란드 원작 소설 작가 블란카 리핀스카(36)의 답변은 간명했다. 그는 ‘365일’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 “성인은 현실과 소설을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받아쳤다. 지난달 다산북스에서 ‘365일’의 한국어 번역판을 출간한 리핀스카를 서면으로 만났다.
‘365일’은 마피아 가문의 수장인 남주인공 마시모가 시칠리아로 휴가를 온 여주인공 라우라를 납치해 ‘당신도 나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365일간의 시간을 달라’는 요구를 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라우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지만 점차 마시모의 매력에 빠지고 그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기에 이른다. 리핀스카는 이 소설로 2019년 폴란드 내에서만 150만 부의 판매량을 올리며 유명 작가로 거듭났다. 스트리밍 서비스 랭킹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영화 ‘365일’은 넷플릭스 서비스 영화 중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콘텐츠다. 넷플릭스는 시청률 누적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제가 읽은 대부분의 소설에는 ‘나쁜 애정 신’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애정 신’을 담은 소설을 쓰기로 했고 꽤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365일’의 인기 요인은 여성의 성적 판타지에 충실한 서술 방식에 있었다. 작가는 솔직하고 당당한 라우라라는 인물을 앞세워 여성 캐릭터의 욕망을 생생하고 조밀하게 표현했다. 리핀스카는 “연인과의 이별이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썼던 소설이어서 여성적인 성적 환상이 더 충실하게 반영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납치와 감금 등 범죄 행위를 소설의 요소로 사용했다는 점은 언제나 비판의 지점이 됐다. 라우라가 이끌어 가는 서사를 ‘주체적 욕망의 표출’과 ‘범죄 미화’ 중 무엇으로 독해할지 독자들의 평가도 엇갈리는 지점이다.
특히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라우라의 감정 변화 과정이 개연성 있게 연출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때문에 “라우라는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기는커녕 성범죄 피해 여성에게 해로운 인물”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영화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자 “서비스를 중단하라”는 일부 이용자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틱톡에서는 영화의 폭력성을 문제 삼자는 뜻에서 멍과 피로 범벅이 된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365dayschallenge’(365일챌린지)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리핀스카는 “범죄 행위가 등장하는 많은 영화들이 오락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사나 캐릭터가 영화로 완벽히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공을 들여 쓴 애정 신만큼은 아름답게 표현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설 ‘365일’은 ‘오늘’, ‘또 다른 365일’이라는 제목의 3부작으로 이어진다. 폴란드에선 모두 출간됐지만 한국엔 1부, 영미권에는 2부까지만 출간된 상태다. 리핀스카는 “두 사람의 애정을 설명하는 데 범죄 행위를 끌어들인 이유를 3부까지 모두 읽는 독자는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