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결선을 앞두고 목 상태가 심하게 나빠져서 거의 포기했죠. 그런데 기적처럼 목이 돌아왔습니다. 열흘 동안 거듭 좌절과 환희를 오갔어요.”
바리톤 김기훈(29)이 19일(현지 시간) 막을 내린 영국 BBC 카디프 세계 성악가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메인 부문(Main Prize) 우승을 차지했다. 카디프 콩쿠르는 1989년 메인 부문에서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가곡 부문(Song Prize)에서 브라인 터펠이라는 불세출의 바리톤을 배출하며 최고 권위의 성악 콩쿠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인으로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 2015년 베이스 박종민이 가곡 부문에서 1위를 했으며, 오페라를 겨루는 메인 부문 우승은 김기훈이 처음이다.
15개국 16명이 결선에 진출한 올해 콩쿠르에서는 1차 결선 중 김기훈이 이끌어낸 ‘눈물’이 큰 화제가 됐다. 그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그리움,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는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심사위원 로버타 알렉산더(소프라노)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BBC TV를 통해 영국 전역에 방송됐다.
“이때만 해도 결과가 좋겠구나 싶었죠. 그러고는 목이 갑자기 잠겼다가 간신히 돌아오기는 했는데 최종 결선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거리의 제1인자’를 그만 망쳤어요. 수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 이름이 호명되더군요.”
그는 5년 전 동아일보 주최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던 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테너 김건우(당시 2위)가 너무 잘 불러 끝까지 마음을 졸인 만큼 환희는 더 컸다. 이후 2019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오페랄리아 콩쿠르 2위를 연달아 수상했다. 한창 커리어가 뻗어 나갈 시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발이 묶였지만 올 시즌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오페라와 독일 뮌헨 주립오페라에서 푸치니 ‘라보엠’, 미국 샌디에이고 오페라에서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출연 등이 예정돼 있다.
그는 7월 8일 경기 성남시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독창회를 연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카디프 콩쿠르에서 열창한 노래들로 구성했다. 심사위원의 눈물을 이끌어낸 ‘죽음의 도시’의 아리아와 바그너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 카디프 콩쿠르 가곡 부문 경연에서 부른 김동환 ‘그리운 마음’을 비롯해 열한 곡을 프로그램에 올렸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반주자로 활동한 성악 전문 피아니스트 정태양이 반주를 맡는다. 4만 원. 031-779-1500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