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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 있는 자화상

Posted July. 08, 2021 08:23,   

Updated July. 08, 202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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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는 왜 자화상을 그릴까. 모델료가 들지 않고, 주문자 취향을 헤아릴 필요가 없는 데다 화가의 역량과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더없이 좋은 장르이기 때문일 테다. 한데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자화상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정물화처럼 그려진 데다 개까지 등장한다. 그는 왜 이런 자화상을 그린 걸까?

 호가스는 가난한 환경 탓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화가 겸 판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부패한 상류층과 탐욕스러운 성직자, 도덕심 없는 하류층 사람들을 통렬하게 풍자한 연작 회화로 큰 명성을 얻었다. 이 자화상은 풍자화가로 승승장구하던 30대 후반에 그리기 시작해 무려 10년 만에 완성했다. 그의 예술적 신념과 야망을 드러내기 위해 그린 것으로 처음에는 정장 차림에 가발을 쓴 귀족의 모습이었으나 나중에 변경했다. 타원형 캔버스에 그려진 자화상을 떠받치고 있는 책들은 그가 존경했던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존 밀턴, 그리고 풍자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저서다. 호가스에게 영감을 준 이들이다. 왼쪽 팔레트 위에는 물감 대신 그의 예술적 신념을 대변하는 “아름다움의 선과 우아함”이란 문구가 있다. 오른쪽에 얌전히 앉아 있는 퍼그견은 호가스의 애견 트럼프다. 퍼그는 조용하고 온순해서 17, 18세기 유럽 왕가나 귀족들에게 사랑받는 견종이었다. 트럼프는 달랐다. 공격적이고 싸우는 걸 좋아했다. 견주는 자신과 닮은 개를 좋아하기 마련인데, 호가스 역시 공격적인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해서 그림 속 개는 화가의 분신이자 호전적인 성격을 상징한다.

 부도덕한 권력자나 상류층을 풍자하기 위해서는 통찰과 해학뿐 아니라 용기도 필요하다. 문제가 생기면 빠져나갈 구멍도 필요한 법. 그래서일까. 호가스는 자신의 재킷을 배경 천과 이어지도록 모호하게 처리했다. 마치 언제든지 연기처럼 빠져나갈 수도, 커튼 뒤로 숨을 수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