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다룬 책들은 숱하게 나왔다. 과도한 영토 팽창에 따른 재정 붕괴부터 정신문명의 쇠락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대부분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이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붕괴라는 관점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를 망하게 한 건 기후변화와 바이러스, 화산 같은 대자연의 힘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마치 ‘운명’과도 같은 비극이 로마를 덮쳤다는 것이다. 2년째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신음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로마 쇠망이라는 거대 주제를 다루기 위해 고대사를 전공한 저자는 기후학과 고고학, 인류학, 생물학 자료를 바탕으로 로마사 2000년을 종횡무진 분석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나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시도한 ‘빅 히스토리’ 역사 서술과 닮은꼴이다.
재밌는 건 저자가 첨단과학을 분석 도구로 삼았지만 그 결론에 있어서는 과학과 거리가 있던 로마인들의 세계관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드’에서 격렬한 폭풍에 내던져진 영웅의 모습을 묘사했듯 로마인들은 우연과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포르투나 여신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서기 400년 무렵 인구 70만 명의 도시였던 로마가 불과 수십 년 만에 2만 명으로 급감한 사실을 인간 시스템의 변화로만 설명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로마의 전성기가 막 지난 서기 150년부터 450년까지 기후가 불안정해지면서 역병이 창궐한다. 여기에 격렬한 화산 활동으로 인해 후기 소빙하기에 접어든 530∼540년경 냉랭한 날씨가 지속된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제국의 팽창으로 인해 활발해진 인구 이동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기록과 연구에 따르면 165년경 천연두로 추정되는 감염병으로 인해 약 700만 명의 로마인이 목숨을 잃었다. 저저가 서문 말미에 쓴 문장은 주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문명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허망한 꿈을 꾸었다.’
김상운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