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가 하루 여덟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라며 문을 걸어 잠그셔서 원망도 많이 했죠.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분은 바로 어머니라는 걸요.” (조수미, 2019년 음반 ‘마더’ 기자간담회에서)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를 키워낸 어머니 김말순 여사가 8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0여 년 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뒤 병원에서 생활해 왔다. 조 씨는 2019년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담은 앨범 ‘마더(Mother)’를 냈고 올해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리사이틀 ‘나의 어머니’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기도 했다.
2004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씨는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이 ‘쟤는 뭘 두드려야 오래 산다’고 얘기해서 부모님이 어려운 살림 가운데서도 피아노를 시키셨다”고 회상했다. 어머니 김 씨도 젊은 시절 성악가가 꿈이었기에 조 씨가 성악에 재능을 보인 순간 장래가 결정됐다. 조 씨는 “어머니가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좋아했다. 나는 뭐든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중에서도 성악은 어머니와 나에게 특별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재학 중 어머니와 스승들의 권유에 따라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조 씨는 1987년 세계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깜짝 오디션을 받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할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오스카역으로 캐스팅되면서 세계적 프리마돈나로 떠올랐다. 그런 그에게도 어머니는 가장 무서운 비평가였다. 한 방송에서 조 씨는 “어머니는 한 번도 내게 잘했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늘 저녁 안 먹었니? 어쩐지 고음이 달리더라’는 식이었다. 가장 무서운 비평가였다”고 회상했다.
2003년 정부가 수여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고인은 2006년 조 씨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 오지 말고 (예정된) 프랑스 파리 공연을 잘하라”고 권해 뜻을 관철하기도 했다. 당시 조 씨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관객에게 아버지의 별세 사실을 알리고 콘서트를 끝까지 마쳤다.
조 씨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SMI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조 씨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에도 ‘음악과 관계된 기억이 가장 오래 간다’는 학설에 따라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위해 전화로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고 전했다. SMI엔터테인먼트 측은 “조 씨가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자가 격리 문제로 한국에 들어와 상을 치를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조수미 외 조영준(SMI엔터테인먼트 대표), 영구 씨(사업)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7시. 유족 측은 조문객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조문을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