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세상 영욕(榮辱)을 다 잊은 채 물 따라 구름 따라 자유로이 떠돌건만 시인은 관직에 얽매여 매양 굽신대어야 하는 처지. 이리도 삶의 궤적이 판달라 평소 내왕이 잦던 친구와 쉬 어울리지 못하는 게 시인은 못내 아쉽다. 십리 길이라면 지척의 이웃 마을이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할 만큼 멀게만 느껴진다.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과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 번잡함이라는 대조적인 환경이 빚은 격절(隔絶)의 장벽을 허물 방법은 없을까. 어렵사리 시인은 창 앞 대나무를 핑곗거리로 찾아낸다. 대나무의 곧음과 푸릇한 기상, 대밭의 은은한 향기라면 은거하는 친구에게도 주인 노릇을 자처할 명분이 되리라. 그래도 친구를 불러내는 마음은 조심스럽기만 해서 ‘문득 고상한 흥이 돋아 초대하노라’고 에두르는 시늉까지 곁들인다.
당시 백거이의 직책은 정9품 현위(縣尉). 한 고을의 세무와 사법 등 온갖 자질구레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백성들과 직접 접촉해야 했으니 퍽이나 번잡스러웠을 것이다. 이 무렵 다른 지인에게 보낸 시에서도 그는 ‘허리 굽히고 두 손 모으느라 심신이 편할 날 없다. 공무는 나날이 늘어가는데 벼슬하고픈 마음 해마다 시들해지네’라고 했다. 신출내기 관리의 고충이 짐작되고도 남는다.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