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에는 웃는 초상화가 드물다. 모델이 장시간 웃으며 포즈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한데 이 그림 속 여인은 너무도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상기된 볼과 빛나는 눈에선 기쁨과 행복이 묻어난다. 검은 베일을 쓰고 있는데도 미소가 가려지지 않는다. 그녀는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스웨덴 출신의 알렉산데르 로슬린은 30대 중반 때 파리에 정착해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인물의 심리와 복장 표현에 탁월했던 그의 초상화는 유럽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외국인이었지만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혔고, 루브르 궁전 안에 아파트와 작업실을 제공받고 연금도 받았다.
이 그림은 그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던 50세에 그린 것으로 모델은 프랑스인 아내 쉬잔이다. 34세의 아내는 화려한 무도회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검은색 베일을 썼다. 검은 베일은 장례식에나 어울릴 것 같지만 여기선 남편을 장난스럽게 유혹하는 도구로 그려졌다. 사실 쉬잔도 전문 화가였다. 두 사람은 1759년 쉬잔의 스승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다. 25세의 신진 화가였던 쉬잔은 열여섯 살 연상의 로슬린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원했지만 가난한 외국인에 개신교도라는 이유로 가족의 반대에 부딪쳤다. 쉬잔은 고집 있고 당찬 여성이었다. 친척들이 소개해 준 남자들을 모두 거부한 뒤 끝내 원하는 사람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여섯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함께 작업을 이어갔다. 쉬잔 역시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되며 승승장구했다. 로슬린은 아내의 파스텔화가 자신의 것보다 낫다며 치켜세우곤 했다. 아내의 눈빛과 표정에서 달달한 행복이 발산되는 이유다.
신의 질투였을까. 안타깝게도 쉬잔은 이 초상화가 완성되고 4년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유혹하는 도구였던 검은색 베일이 결국 아내의 장례식을 암시하는 표시가 될 줄 로슬린은 상상이나 했을까.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