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호텔 지하에는 음향, 음식, 조명을 도맡아 행사를 돕는 후방 부서 ‘백 오피스(Back Office)’가 있다. 화려한 행사가 열리는 호텔 라운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땀 냄새 나는 일터. 이곳에서 세 여성이 만난다. 육아휴직으로 승진 경쟁에서 밀린 호텔지배인 혜원과 소규모 행사기획사에서 일하는 강이, 대형 행사를 발주하는 대기업 대리 지영. 소속은 다르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이들은 에너지 대기업 ‘태형’의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행사 계약금만 10억 원. 이를 따내기 위해 호텔업계와 기획사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다. 경쟁업체 직원을 비밀리에 스카우트하는 권모술수가 오가는 전장에서도 세 여성은 페어플레이를 고수한다. 경쟁자의 치명적 약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누설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는 걸 백 오피스에 있는 이들은 알고 있다.
갑과 을의 관계를 떠나 ‘우리’가 되어 계약을 따낸 이들은 실수로 잘못 배송된 물품을 놓고 서로를 탓하는 대신 함께 해법을 찾는다. 하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 찾은 해법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행사 당일 우려했던 사고가 터진다. 아수라장이 된 행사장에서 이들은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지원군이 되어준다. 첫 인사를 나누던 날 “나를 좀 도와 달라”며 악수를 건넨 지영의 손을 맞잡으며 혜원이 남긴 말처럼. “우리는 나보다 힘이 센 법이니까.”
세 여성의 도전은 끝내 실패하지만 그 끝이 쓸쓸하지만은 않다. 귀빈들이 모두 떠난 연회장에서 이들은 홀로 남겨져 있지 않다. 담담하게 ‘우리의 실패’를 함께 겪어낸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변명하지도 않으면서.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최유안의 첫 장편소설이다. 38세 젊은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 회사원으로 일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여러 동료와 함께 일궈냈던 작가의 경험이 책 속에 녹아 있다. 마지막 장에 ‘이 소설은 자기 일을 매 순간 조금씩 해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진심의 응원’이라는 작가의 말이 담겼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